[김성수칼럼] 동지(冬至), 삼손과 들릴라
[김성수칼럼] 동지(冬至), 삼손과 들릴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2.23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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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2일(토)은 동지(冬至)였다. 겨울은 24절기상 입동(立冬)에서 시작되어 동지에는 절정에 달한다. 동지의 한자풀이는 공중을 날아다니는 새가 땅에 내려앉듯 ‘겨울이 극에 달하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일반적으로 동지는 ‘겨울의 중심’이지만, 자연현상으로는 낮이 제일 짧은 반면 밤이 제일 길다. 실제로 동지가 지나면 낮은 노루꼬리만큼 길어지고, 밤은 노루꼬리만큼 짧아진다. ‘동지 지나 열흘이면 해가 노루꼬리만큼씩 길어진다’는 속담에서도 알 수 있다.

동짓날의 밤이 길다는 것은 “동짓달 긴긴 밤의 한가운데를 베어 내어”라고 읊은 황진이의 시조에도 나온다. 결국 동지는 겨울의 끝이자 밤이 최고로 긴 날이다. 옛날 농경사회에서는 동지를 한해의 마무리, 새해의 시작으로 인식했다. 즉 한해의 시작과 태양의 부활로 인식한 것이다. 그 때문에 동지음식 팥죽이 생겨났다.

붉은 색의 팥과 흰색의 새알이 어우러진 팥죽은 한해의 시작을 상징하는 벽사진경(酸邪進慶)·벽사초복(僻邪招福)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때 팥의 붉은 색은 삿된 기운을 쫓아 버린다는 의미이고, 새알의 흰색은 태양의 빛 즉 기쁜 일(慶事)과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복(福)을 불러들인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설날음식 떡국 역시 태양빛의 조각으로 볼 수 있다.

동지음식 팥죽은 어둠과 빛으로 비유된다. 팥죽은 캄캄한 어둠을, 새알 혹은 새알심(찹쌀 경단)은 작은 빛들이다. 팥죽은 찹쌀로 경단을 빚은 후 팥을 고아 만든 죽에 넣고 끓인다.

이때 경단은 새알만한 크기로 만들기 때문에 겉으로는 새알[鳥卵] 혹은 새알심이라고 부르지만 교훈적으로는 세알(歲謁) 혹은 세알심(歲謁心)이란 뜻을 내포한다. 새해에 인생의 경험이 풍부한 기로를 찾아뵙고 덕담을 청하는 것이 세알 혹은 세알심인 것이다.

이때 내놓는 팥죽은 삿된 것을 물리친다는 의미로, 새알의 흰빛은 어둠의 무명에서 밝음의 지혜로 변화하는 것으로 여겼다.

‘동지에 팥죽을 한 그릇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다’는 동지첨치(冬至添齒)라는 말도 자기 나이만큼 새알 즉 지혜의 빛을 찾음으로써 무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지가 전승되는 과정에서 교훈적 본질은 퇴색되고 동지부적(冬至符籍), 동지책력(冬至冊曆), 동지헌말(冬至獻襪=집안어른에게 버선을 지어 바치며 장수와 복을 빔), 유교의 승경도(陞卿圖), 불교의 성불도(成佛圖) 같은 민속, 불교민속의 전승이 강조·부각됐다고 본다.

무명을 밝힌다는 것은 민속에서 보이는 옷의 색과 창사(唱詞)에서도 알 수 있다. 전통 장례에서 상주가 소복(素服)을 입는 풍습에는 영혼이 밝은 빛을 찾아가는 데 힘을 보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울산의 민속놀이 매귀악의 ‘등광궐아대보살’은 어둠을 밝히는 큰소리인 것이다.

동지음식 팥죽 한 그릇에는 민속과 교훈이 함께 녹아 전승되고 있지만, 교훈은 점차 사라져 꼬리뼈의 흔적처럼 남아있고 그것을 알고 가르치는 사람도 없다. 그저 뜨거운 팥죽을 앞에 두고 입으로 불어서 허기를 채우는 한 끼 별식쯤으로 여기며 가볍게 지나갈 뿐이다. 성경 <사사기>에는 13장에서 16장까지 무려 4장에 걸쳐 삼손(Samson)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태양, 지혜와 힘으로 상징되는 자르지 않은 긴 머리 모습의 나실인 삼손도 재색(財色=은 천백 개와 미모)과 어둠으로 상징되는 들릴라(Delilah)에 의해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리게 되자 무명(無明)의 늪에 빠지고 두 눈까지 빼앗겨 빛을 잃게 된 이야기의 기록이다.

삼손과 들릴라는 긴 어둠의 밤과 짧고 밝은 낮의 동지라는 자연현상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삼손은 지혜의 상징 대일(大日)로, 들릴라는 재색의 상징 흑암(黑暗)으로 상징되기에 그러하다. “들릴라가 삼손으로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하고 사람을 불러 그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본즉 그 힘이 없어졌더라.”(사사기 16:19)

삼손의 일곱 가닥 머리털이 삭도로 밀리게 되자 태양은 긴 어둠의 늪으로 떨어지고 만다. 다행히 삼손이 무명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될 즈음 태양은 서서히 부활하게 된다. “그의 머리털이 밀리운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사사기 16:22). 삼손은 비록 두 눈이 빠진 채 캄캄한 어둠 속에서 무거운 맷돌을 돌리게 되지만 지혜의 태양빛으로 상징되는 머리털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한 것은 무명에서 지혜로 지향하려는 간절함 덕분이었다. 어느 날 삼손이 여호와께 크게 부르짖어 기도한다.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사사기 16:28)

지눌 스님도 계초심학인문을 통해 “재물과 여색의 화는 독사보다 더 심하니 자기 자신을 잘 살펴서 그릇됨을 알고 항상 멀리해야 한다.(財色之禍 甚於毒蛇 省己知非 常須遠離)”는 교훈을 남겼다.

삼손과 들릴라 이야기를 동지를 바탕으로 무명(無明)에서 점차 벗어나 지혜(智慧)로 나아가는 의미로 접근해 봤다. 동지팥죽이 한낱 세시풍속으로 가볍게 지나는 것이 올해도 무척 아쉬울 따름이다. 동지는 현상적 답습과 교훈적 본질이 함께할 때 가치가 있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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