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물결로 넘실대는 대한민국
혁신의 물결로 넘실대는 대한민국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2.1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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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3년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옹호하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갈릴레이는 이미 1610년에 망원경으로 태양의 흑점, 달의 표면, 금성의 위상 변화, 목성의 4개 위성 등을 관찰하여 지동설을 공표했다. 이에 대해 로마 교황청은 갈릴레이의 이러한 견해가 ‘철학적으로 우매하고 신학적으로 이단적’이라며 경고하면서 그의 견해를 포기하도록 강요하고 탄압했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이에 굴하지 않고 1632년 다시 한 번 지동설을 지지하는 견해를 확인했다. 결국 갈릴레이는 유죄 선고를 받고 교황청을 나서면서 역사에 남을 이 한마디를 남긴 것이다.

갈릴레이는 350년이 지난 1992년에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로마 가톨릭교회가 갈릴레이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이 실수였을 수 있다”는 의견을 바탕으로 간신히 복권되었다. 중세시대는 천동설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으로서 성서에 나오는 창조론을 지지하기 위한 과학적 이론으로 여겨지던 시대였다. 따라서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의 지동설에 관한 주장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학설로 여겨졌을 것이다. 오늘날 지극히 당연시되는 지동설이 불과 몇 세기 전만 하더라도 교황에 의해 탄압받는 의견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는 참으로 합리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는 안도감이 든다.

이처럼 기존 사회에 고착되어 있는 사고방식을 흔들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사람은 초기에는 칭찬과 존경보다는 대체로 비난과 웃음거리, 심지어는 억압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다만 현대에는 그러한 혁신적 사고에 대해 사회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수용하며 그 의견을 받아들이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혁신가의 중요한 덕목으로는 혁신적 사고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에게 수용되고 인정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끈기와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혁신적 사고의 혜택으로 그 사회가 발전하려면 그 혁신가가 속한 사회가 혁신성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 최무선의 화포, 세종대왕의 한글, 장영실의 자격루, 이순신의 거북선 등 전 세계 어느 혁신사례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혁신의 DNA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나라는 그런 혁신적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는 사회적 수용성이 선진국에 비해 많이 뒤처진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젊은이들이 창의적 발상과 혁신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직업보다는 이미 정착된 시스템에 안주하거나 기존의 경제구조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공무원, 판검사, 의사, 교사 같은 직업에만 몰리는 현상은 참으로 우려스럽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이미 혁신성의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퇴보를 했다는 신호다. 현재 경제위기도 이러한 혁신성의 수용 부족이라는 점에서 보면 단순한 경제지표의 문제가 아니라 상당히 구조적인 문제라고 여겨진다. 최근 우리나라는 미세먼지 등 환경 문제가 매우 중요한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적 기술개발이나 시스템 구축에 관한 사회적 수용성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의 환경 문제 및 미래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기술을 과학기술인 모두가 한 마음으로 개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진전이 보이지 않아 매우 안타깝다.

우리나라가 지속가능한 성장과 혁신적 발전을 위해서는 위정자(爲政者)들이 이러한 문제점을 바르게 인식하고 우리나라를 다시 혁신의 사례가 넘쳐나는 소통의 장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우리 후손들은 조상들의 뛰어난 혁신의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한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우리나라가 다시 혁신의 물결로 넘실대는 생동감 넘치는 터전이 되기를 소망한다.

서영호 아트만 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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