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호섭이 들려주는 ‘한국 근현대 해운 개척사 이야기’ 20
심호섭이 들려주는 ‘한국 근현대 해운 개척사 이야기’ 20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2.18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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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모임에서 훈화하는 이시형 학장. 사진 원경의 허름한 집들과 길거리의 빈터 같은 풍경으로 미루어보아 당시 이 학교의 어려웠던 학사 진행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전체모임에서 훈화하는 이시형 학장. 사진 원경의 허름한 집들과 길거리의 빈터 같은 풍경으로 미루어보아 당시 이 학교의 어려웠던 학사 진행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시형의 아버지는 신의주가 종점인 경의선 기관차의 기관사였다. 당시에 증기기관으로 달리는 기관차는 가장 첨단의 과학기술 분야에 속했다. 그러므로 그가 성장해서 일본 도쿄고등상선학교의 기관과를 진학한 것은 아무래도 이러한 아버지의 직업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시형은 유학시절 매우 근실하고 조용한 성품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졸업 후의 행적을 보면 그는 독립사상, 항일 저항정신이 매우 강한 해기사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시형이 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우선에서 2등기관사로 승선근무하던 시절, 그 때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치르며 바다에서는 수많은 일본 함정과 민간수송선들이 폭격을 당해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전시에 일본은 군수물자를 생산할 원자재의 상당 부분을 그들이 점령한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지의 남방 열도에 의지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실은 수송선들은 미 잠수함의 공격을 피하기 위하여 선단을 이루고 한 척의 구축함이 호위하게끔 했지만 피격 침몰을 모면하기는 쉽지 않았다. 당시 수송 선단의 선박에 승선하고 있던 이시형은 선단의 선박들 중 한 척이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 날 밤, 그가 승선한 선박의 한국인들을 갑판에 모아 놓고(일제강점기에 화물선에 승선근무한 한국인은 거의 보통선원들이었다) 그들에게 지금의 사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지금 이 전쟁은 일본이 지는 전쟁이다, 우리는 남의 나라 전쟁에 끌려 와 있다, 일본을 위해서 개죽음 당해서는 안 된다, 모항에 입항하면 모두 하선하길 바란다, 라는 대략 그런 내용이었다. 이 날 이시형의 연설을 들은 이들 중에는 훗날 해방이 되고 이시형이 설립한 진해고등상선학교의 별과에 입학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가 전하는 바로는, 당시는 일제가 전쟁 중이라 그런 발언은 매우 위험했지만 이시형은 거리낌 없이 말을 하고 있었고 감동을 받은 그들은 어느 누구도 그 날 밤의 이야기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고 한다.



이시형은 승선근무 중에 상사인 일인 선장, 기관장과 자주 마찰을 일으켰다. 졸업 후 그가 승선생활하던 조선우선은 사관은 대다수 일본인이고 조선인은 하급선원이었는데, 그는 업무적인 사안에서뿐만 아니라 하급선원인 조선인들이 받는 불이익에 대하여 항의를 하곤 했기 때문에 그 결과, 같은 동기생들보다 기관장 승급이 많이 늦었다.



이시형은 한국 해운계에서는 기인 중의 기인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그의 삶이 특별한 기행이 아니면서도 기인으로 기억되는 것은 그의 솔직담백하면서도 급한 성격 때문이다. 그는 매우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길을 가다가 길가에 거지를 보면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을 벗어 줄 정도로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는 성격이 지나치게 솔직하여 사적으로 공적으로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이 때문에 그를 오해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는 싫고 좋음, 옳고 그름의 구분이 너무나 명확한 사람이어서 주변의 사람을 곤혹케 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의 한국해양대학 재직 시절, 이러한 성격으로 그의 제자 가운데는 스승의 매를 맞지 않은 제자가 거의 없을 정도로 그는 제자를 훈계하는 데에 스스럼이 없었다(당시에는 사랑의 매는 일반적이었다).



그의 품성을 논할 때, 그에게 과연 교육자적인 자질이 있는가, 라고 의심이 들게 하는 것은 사석이든 공석이든 전혀 격식을 차리지 않는 그의 옷차림과 자유로운 처신에 있다. 그는 사실 교육자, 또는 교육행정가적인 자질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는 평상시 옷차림이 별로 단정하지 못했다. 물론 난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허름하다 라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그는 평상시 양복을 입었지만 반듯하게 다려 입는 일이 드물었다. 혹시라도 그 전 날 술자리가 있어서 약주라도 든 날이면 이튿날 그의 저고리에는 막걸리인지 안주가 묻은 건지 얼룩이 져 있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은 듯했다. 학장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외부 인사와 식사를 함께 하는 일도 있는데 그럴 때 반주를 마시게 되면 술이 세지 못하고 입담도 별로 좋지 않았던 그는 혼자 자작하며 마시다 한 쪽에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함께 대동한 서무 직원이 손님과 대작하며 잠든 이시형의 역할을 대신하곤 했다. 그런 그가 당대의 문사인 신상초라든지 당시 한국 조선학계의 유일한 조선공학자인 김재근을 직접 만나 이 학교의 교수로 영입할 수 있었던 것은 얼른 납득이 어렵다.



광복 후부터 6.25전쟁을 거쳐 1950년대 중반까지의 극심한 혼란정국에 이시형이 한국해양대학장 직을 수행한 것은 한국 해운계를 위해서는 그야말로 천행이었다. 이시형은 하늘이 한국 해운계에 내어 준 사람이었다. 시대는 교육자적인 자질을 가진 고상한 교육자보다는 시대의 고난을 짊어질 오직 사명자를 원했다.



1946년 1월 5일, 해기사 양성 교육기관인 진해고등상선학교(이 교정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진해고등해원양성소가 운영되었다)의 문을 연 교장 이시형과 몇 명의 교직원은 1기생 신입생들을 맞았다. 학교 설립은 당시 아직 정부 수립 전이어서 미군정으로부터 허락 인수 받았는데, 일제로부터 막 해방되어 선박도 자본도 화물도 아무것도 갖추어지지 않은 한국 해운의 상황에서 왜 이와 같은 해기사 양성 교육기관을 설립했는가는 이시형과 그와 함께 한 교직원들만이 알 일이다. 학교는 개교 당시 항해과 기관과 각각 40명씩 모집했는데 광복 후의 혼란 정국만큼이나 동종의 다른 교육기관과의 합병, 또는 다른 지역으로 이전 등으로 한 동안 매우 불안정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학교는 지금도 그렇지만(현재 한국해양대학교의 해사대학을 말한다) 국립이어서 등록금은 물론 학생들의 의식주 생활이 관비로 운영하게 되어 있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여 특히 식사 문제에 있어서는 양식 부족으로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 구해온다든지 조기방학을 하는 등 애로 사항이 참 많았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학교는 전문교과와 교양교과에서 최소한의 교수진을 갖추었고 학사운영도 그런대로 정상적으로 운영해 나갔다.



진해고등상선학교 즉, 진해해양대학(1946년 8월 15일에 개명되었다)이 맞은 1차 시련은 해군병학교(지금의 해군사관학교)가 학교 통합을 제의한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말인즉 해군사관을 양성하는 해군병학교와 상선사관을 양성하는 진해해양대학을 합쳐 해양사관 교육을 일원화하자는 언뜻 보면 근사한 내용이었다. 제안을 받은 진해해양대학은 측은 고민에 빠졌다. 당시 진해해양대학의 교정은 진해의 해군통제부 관내에 있었고, 해군으로 보아서는 신생조국의 바다를 수호할 해군사관 양성 교육 시설이 무엇보다 절실한 때였다. 그 해 1946년 10월에 해군병학교의 대표가 와서 다시 한 번 정식으로 두 학교의 통합을 제안했다. 이에 대하여 대부분의 교수들은 침묵을 지켰고, 학생들은 크게 반대했다. 그 후 2개월이 지나서 미군정의 통위부(정부수립 후의 국방부에 해당)로부터 교사를 해군병학교에 양도하라는 일방적인 명령을 받았다. 이시형과 교직원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이시형과 교수진과 학생들은 인천으로 올라갔다. 인천에는 일찍이 황부길(이시형보다 도쿄고등상선학교 1년 선배이다. 훗날 해운국장 등 한국해운개척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이 미군정의 부탁을 받아 개교했지만 학사진행에 실패하여 대책이 없던 인천해양대학이 있었다. 인천에서 진해해양대학은 진로가 막막했다. 이시형은 교사를 구할 수 없어 여러 가지로 방편을 모색했는데 해결책이 없었다. 그 때 미군정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인천 월미도에 해안경비대(훗날 해군)가 접수 관리하던, 일제 때 일인들이 유흥업소로 쓰던 적산가옥이 한 채 있는데 그 곳을 쓰라는 것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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