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초보의 교육청 파견기, 그 마지막 이야기
생초보의 교육청 파견기, 그 마지막 이야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2.10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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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한 쪽 모퉁이에 2018년 달력의 마지막 장이 쓸쓸하게 걸려 있다. 그 많던 친구들이 어느 결엔가 한 장씩 다 찢겨 떨어져 나가고 혼자만 달랑 남아 있다. 한 장 남아 있는 달력의 1부터 31까지의 숫자들도 벌써 1/3을 넘어선 시점이다. 남아 있는 숫자들은 12월의 마지막 날들이면서도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2018년 병술년 한 해의 마지막 남은 날들이기도 하다. 

흔히들 100일을 ‘석 달 열흘’이라고 부른다. 우리 민속을 살펴보면 우리 민족이 ‘100’이라는 숫자에 많은 기대를 걸면서 살아 왔음을 알 수 있다. ‘백일잔치’, ‘100일 기도’, ‘100번’ 등등... 살아가면서 나름의 의미를 간단하게나마 부여하고 싶을 때 찾곤 하는 숫자 중의 하나가 ‘100’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어린아이의 ‘백일잔치’는 ‘100’과 관련된 말 중에서도 가장 큰 기쁨을 나타내는 말이다. 

사계절의 기온 변화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게 하는 축복이 분명하다. 하지만, 의학의 혜택이 모든 이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못하고 의료수준이 크게 발달하지 못한 과거에 찾아온 계절의 변화는 어린아이에게 큰 위협이 되기도 했다. 요즘에야 병원에서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으면 금방 나을 수 있는 ‘감기’도 예전에는 면역력이 낮은 아기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큰 질병이었다. 따라서 부모의 입장에서 어린아이가 100일을 맞는다는 것은 외부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큰 탈 없이 잘 자라고 있음을 뜻했다. 대체로 3개월마다 계절이 바뀌었기 때문에 어린아이가 태어나 100일이나 자라주었다는 것은 어려운 고비를 잘 넘겼다는 의미이므로 부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00일이라는 제법 긴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새로운 성장의 출발점에 서게 된 것을 축복해 주는 행사가 바로 ‘백일잔치’가 아니었을까. 

지난 9월 1일부터 시작된 교육청 파견근무도 어느 새 백일을 지났다. 갓난아이가 온갖 어려움을 엄마의 젖과 아빠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이겨내고 백일을 맞이했듯이, 필자도 교육청이라는 낯선 환경 속에서 ‘무탈하게’ 백일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이들의 배려와 관심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점심식사를 어디서 하는지 몰라 당황하기도 했고, 학교처럼 실내화를 신고 다녀도 되는 줄 알고 출근 후 내내 실내화만 신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제법 눈칫밥에 익숙해지고 난 뒤부터는 여러 가지 일처리를 다른 분들을 따라 하기에 바빴고, 때로는 목을 길게 뽑아 눈대중으로 일을 처리하기도 했다. 늘 웃음 가득한 비서실 직원들과 창의인성과장님을 볼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스마일’, ‘스마일’ 하며 마음속으로 되새긴 적도 있었다. 

100일 동안 가장 깊게 인상에 남는 분은 김정원 장학사님이다. 담당업무가 민주시민 교육이다 보니, 모든 생각의 끝은 학생들의 ‘민주시민성’에 두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이분의 맡은 업무에 대한 자긍심과 전문성은 어떤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교육청에 갓 들어온 생초보의 눈에는 그야말로 ‘우러러 보일’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초·중등 학생들의 토론 행사와 학교장의 토크콘서트 행사를 준비하고 추진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교육전문직의 역할과 의미의 교과서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또한 다른 전문직과 행정직에 계시는 많은 분들도 학교현장에 있었다면 자세히 알 수 없었던 교육행정의 이모저모를 직접 살펴보도록 배려도 해 주셨다. 어쩌면 그분들 모두가 갓 태어난 아기가 온갖 어려움을 모두 다 잘 이겨내기를 바랐던 동네 주민들의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어 고마울 따름이다. 

아기가 백일을 잘 견뎌내었듯 다가오는 첫 돌까지도 ‘생초보’라는 딱지를 무사히 뗄 수 있도록, 그리하여 두 손 두발로 힘껏 땅을 짚고 일어나 ‘업무의 공간’으로 열심히 돌아다닐 수 있도록 좀 더 대범해지려고 노력해야겠다.

김용진  명덕초등학교 교사     (울산시교육청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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