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해냈다’
‘드디어 해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2.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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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12개월간 울산 태화강 중류에 서식하는 조류의 종과 마리수를 조사했다. 조사지역은 위로 범서대교에서 아래로 삼호다리까지였다.

이 구간에는 낙안소, 사군탄, 해연이 자리하고 있다. 이 중 사군탄지역은 척과천과 태화강이 만나는 이수(二水)지역으로 물이 여울을 지나는 곳이다. 이곳은 물속에 자갈이 많아 흐르는 물과 자갈이 서로 포옹하며 안부 묻는 인사가 요란하다.

요란한 인사는 건강한 자연을 만든다. 소리를 내며 포말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때 물은 자갈과 잦은 포옹을 하면서 신선한 산소를 가슴 가득 품는다. 이와 같은 용존산소량의 증가는 좋은 서식처를 수생동식물에게 제공한다.

또한 강 중간 중간에는 홍수의 영향으로 모래섬(하중섬)이 잘 발달되어 있다. 굴화와 다운동을 이어주는 징검다리는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곳이다. 특히 조사구간에 포함된 낙안소(落雁沼)는 ‘기러기가 내려앉는다’는 곳으로 배리끝, 사군탄 등 다양한 인문학적 설화를 낳은 곳이기도 하다.

조사구역의 전체거리는 약 4㎞였다.

그 중 약 2㎞는 도보로, 나머지 구간은 차량을 이용했다. 주 3회(매주 월·수·금요일), 약 1시간(08:30∼09:30)에 걸쳐 조사했다. 11월 6회, 12월 11회, 1월 14회, 2월 12회, 3월 13회, 4월 13회, 5월 13회, 6월 13회, 7월 13회, 8월 14회, 9월 12회, 10월 14회 등 총 148회였다.

강바람이 세찬 겨울날과 더운 여름날은 핑계의 유혹과 싸워야 했다. 그런 시간 속에서 고라니의 출산을 관찰했고 수달, 청솔모, 다람쥐와 두꺼비도 만났다. 산책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는 좌우를 살피는 선(線)조사와 함께 새 울음소리를 놓치지 않는 청음(聽音)조사, 눈으로 확인하는 목시(目視)조사를 병행했다. 그 결과 아비목, 논병아리목, 사다새목, 황새목, 기러기목, 두루미목 등 15목(目), 가마우지, 백로, 민물가마우지, 뜸부기 등 32과(科), 파랑새, 쇠딱따구리, 꿩 등 84종(種) 총 3만604마리를 집계할 수 있었고, 비교적 다양한 분류군의 새들이 서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면적은 약 40만4천㎡였다. 그 속에서는 텃새인 참새가 열두 달 6천142마리(20.0%)나 관찰되어 우점도 1위를 차지했다.

같은 텃새인 뱁새는 3천798마리(14.0%)로 우점도 2위, 흰뺨검둥오리는 2천955마리(10.0%)로 3위, 물닭은 2천704마리(9.0%)로 4위, 직박구리는 2천69마리(7.0%)로 5위를 각각 차지했다. 아비, 깍도요, 검은머리흰죽지, 물수리, 새매, 참매, 호반새, 노랑할미새, 알락할미새, 휘파람새, 곤줄박이 등 11종은 각각 1마리씩만 관찰됐다.

총 148회 조사에 걸린 시간은 약 222시간, 누빈 거리는 약 300㎞였다. 그 결과 15목 33과 84종 3만604마리의 값진 자료를 야장(野帳, ·fieldbook)에 기록할 수 있었다. 조류를 조사하는 마음은 어쩌면 풀코스를 혼자 달리는 마라토너의 그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해야 되는 탓이다.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의 기회가 영광스럽게도 필자에게 주어졌다는 감사 때문에라도 정직하게 조사해야 했다. 서산대사의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는 조류학자의 진실성을 계속 강조하는 따끔한 편달(鞭撻)이나 다름없다.

“눈 내린 들판을 걸을 때에는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오늘 남기는 나의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조사를 2년째 계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3일, 서울대 경제학부 연구팀(홍석철, 윤양근, 유지수)이 건강보험공단, 통계청, 질병관리본부, 삶의 질 학회 등에서 각기 집계하는 국민건강 지표들을 통합·개발하여 작성한 ‘2016년 국민건강지수 평가서’를 발표했다.

그 결과 떼까마귀의 전국 최대 월동지인 울산이 전국 1위를 차지했다. 국민건강지수는 질병이환 및 사고, 건강행태, 정신건강, 예방접종 및 검진, 인구변화 등 10개 영역과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음주·흡연 등 29개 지표를 종합적으로 평가한 수치라고 한다.

매년 겨울철 약 10만 마리의 떼까마귀가 찾아오고, 매년 여름철새 백로가 번식하러 찾는 울산이 국민건강지수 평가에서 전국 1위를 차지한 것이 우연의 일치일까? 떼까마귀·백로와 함께하는 지역은 시민의 몸 또한 건강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조사구간인 사군탄지역(범서대교, 낙안소, 사군탄, 해연, 삼호교)의 조류조사는 필요에 따른 간헐적 조사는 있었으나 1년간 지속적인 조류조사는 이번이 처음인 만큼 귀중한 자료로 생각된다. 이번에 축적된 자료들이 앞으로 사군탄지역의 조류탐방 프로그램 및 홍보 프로그램의 개발, 지역 조류의 보전방안 제시, 자연환경정책 개발의 기초자료 활용, AI 등 예찰 및 방역사업의 참고자료 활용 등으로 이어진다면 지역경제 활성화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이러한 조류조사 자료는 이 지역에 서식하는 조류의 가치를 인식하고 기초자료를 확보함으로써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태화강 주변의 난개발을 막을 수 있는 객관적 근거자료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 조류생태학박사·울산 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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