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사랑-‘아모레스 페로스’
개 같은 사랑-‘아모레스 페로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2.0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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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아모레스 페로스>에서 옥타비오(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는 형수인 수잔나(비네사 바우체)를 사랑하고 있었다. 형은 괴팍한 성격에 형수 몰래 아무 여자와 쉽게 바람을 피우는 난봉꾼이었다. 형의 횡포에 힘들어 하는 형수를 자주 위로해줬던 옥타비오는 형수와 점점 가까워져갔고, 형수도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형은 돈을 벌어다주지 않았고, 가난한 형편 탓에 지금 형수는 아기 기저귀도 살 돈이 없었다. 그런 어느 날 집에서 키우던 개인 코피가 동네 투견장에서 1등 먹던 개와 우연히 길거리에서 붙어 이겨버리게 되고, 코피의 재능을 알게 된 옥타비오는 코피를 투견장에 보내 돈을 크게 벌기 시작한다. 옥타비오는 번 돈을 모조리 형수인 수잔나에게 줬고, 형 몰래 함께 도망가서 살자고 제안한다. 급격히 가까워진 둘은 몸까지 섞게 된다.

비슷한 시각, 같은 도시에 사는 다니엘(알바로 구에레로)은 와이프와 두 딸을 버리고 유명 배우이자 내연녀였던 발레리아(고야 톨레도)와 동거를 시작한다. 처음엔 좋았다. 둘은 서로를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 하지만 얼마 뒤 발레리아는 교통사고를 겪으면서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다. 다시 걸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상황. 다니엘의 극진한 간호 속에서도 둘의 관계는 점차 틀어지기 시작한다. 발레리아에게는 리치라는 부티 나는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지만 교통사고 이후 실종된다. 그 일로 발레리아와 다니엘의 관계는 더욱 나빠진다.

그 도시에는 엘 치보(에밀리오 에체바리아)라는 살인청부업자도 살고 있었다. 노숙자 행세를 하면서 그는 버려진 개들을 키우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엘 치보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과거 와이프와 딸을 버리고 공산주의 게릴라 활동을 했었다. 하지만 수년간의 감옥생활을 하면서 삶에 회의를 느껴 지금 살인청부업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어느 날 우연히 전처의 죽음을 알게 된 엘 치보는 딸인 마루를 다시 찾게 되고 그녀 주위를 맴돌게 된다.

옥타비오와 수잔나, 다니엘과 발레리아, 엘 치보와 마루는 서로 모르는 커플들이지만 옥타비오와 발레리아, 엘 치보는 발레리아의 교통사고 현장에 함께 있게 된다. 옥타비오가 도주하다 발레리아의 차를 박아버렸고, 그 사고 현장에 엘 치보는 행인으로 가까이 있었던 것. 서로를 전혀 몰랐지만 그들 모두 개와 함께 있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제목인 아모레스 페로스의 뜻은 ‘개 같은 사랑’이다.

사랑은 개 같다. 그 이름만 들어도 설레고 아름답지만 그 뒤에는 늘 배신과 상처가 도사리고 있다. 사랑으로 상처받은 이에게 사랑은 개 같아진다. 욕도 나오고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라 다짐도 한다. 영화 속에서 옥타비오가 그러했다. 형수인 수잔나에게 모든 걸 다 줬지만 끝내 그녀를 얻지 못한다.

사랑은 또 개 같다. 이기적일 때가 있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에게 무게중심이 이동하면서 얼핏 이타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랑하다 힘들어지면 상대방에게 개 같이 짖는다. 막말은 기본, 그런데도 화해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잘해준다. 거의 광견(미친개) 수준이다. 영화 속에서 다니엘과 발레리아도 그랬다. 미친개처럼 서로를 향해 짖는다. 그러고 보면 사랑이란 상대방을 사랑하기 보다는 사랑에 빠져 행복한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사랑은 진짜 개 같다. 희망을 준다. 욕으로 사용되는 등 개는 인간에 의해 자주 천대받지만 인간에게 개란 존재는 그렇게 막대할 군번이 아니다. 개만큼 충직하고 이타적인 동물이 또 있을까. 개는 주인이 부자든, 가난하든, 똑똑하든, 바보든 당신이 마음을 열면 모든 걸 준다. 결코 배신하는 일이 없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한결 같은 개는 늘 위로와 희망이 된다.

사랑도 마찬가지. 배신과 상처가 도사리고, 이기적일 때도 있지만 인간은 결국 사랑 때문에 산다. 사랑하며 상처받지만 다시 사랑 때문에 희망을 얻게 된다. 이 영화에서처럼 인간 곁에는 늘 개가 있듯이 사랑도 늘 우리 곁에 있다. 다만 찾으려 하지 않을 뿐. 영화 속에서 엘 치보도 버려진 개들을 키우면서 딸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희망을 다시 찾게 됐다.

비록 사랑의 상처로 지금 당장은 아파도 시간이 지나면 사랑은 반드시 추억이라는 보석을 잉태하기 마련. 그 시간을 사랑을 하지 않고 보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무미건조한가. 그래서 지나고 나면 안다. 할 때는 아무리 ‘개 같은 사랑’이었다 해도 결국엔 ‘개감동’이 된다는 것을.

2001년 11월 7일 개봉. 러닝타임 153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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