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보물
나의 보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2.05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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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이 맞으면 10003(만세)라고 보내줘.”

삐삐(호출기)로 연락을 주고받던 1995년도. 결혼을 하고 첫 아기를 임신을 했을 때 남편이 출근하면서 했던 말이다.

난 엄마가 될 수도 있다는 부푼 가슴을 안고 산부인과를 찾았다. 접수 후 차례를 기다리는 그 때부터 나는 아기에게 편지를 썼다.

‘아가야, 네가 나에게 온다면 정성을 다해 모유를 먹일 거야. 그리고 건강하고 지혜로우며 가슴 따뜻한 아이로 잘 키울 거야.’

얼마나 기다렸을까.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려 진료실로 들어갈 때의 두근거림을 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신기하게도 정말 임신이었고, 초음파로 보이는 아기는 검은콩만한 크기였다. 남편과 난  둘 다 아기를 좋아한 터라,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임신을 하기로 계획했었다. 감사하게도 그 계획이 이루어진 것이다.

임신 전에는 남편에게 술도 못 마시게 하고, 몸과 마음을 다해 아기를 맞을 준비를 하자고 했었다. 그 때 아무 말 없이 동참해 준 남편이 참 고마웠다.

난 결혼을 두 달 앞두고 태교 책을 구입해서 정독을 했다. ‘임신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엄마의 첫 느낌이 아이의 일생에서 아주 큰 영향을 준다’는 구절이 생각난다.

나름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를 했었기에 임신은 감사와 기쁨 그 자체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입덧이 심해졌다.

하루 종일 멀미라도 하는 듯 속이 울렁거렸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힘없이 두 달을 보냈다. 

그 때도 난 태중일기를 쓰면서 뱃속에 있는 아기와 대화를 했다.

‘아가야, 이것 또한 너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라면 엄마는 다 참을 수 있어.’ ‘아기는 아무나 낳아도 모유는 아무나 못 먹인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 것 같았다. 심한 젖몸살로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갈듯한 아픔도 견뎌야만 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섯 살 된 아이가 태중일기를 보더니, 고 작은 눈망울에 이슬방울을 매달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엄마, 날 이렇게 많이 사랑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불쑥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난 아이를 한참이나 안아주었다. 지난날의 마음조각들을 글로 남길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는 순간이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잘한 것 몇 가지를 말하라고 한다면, 난 첫 번째로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할 것이다. 아이가 성장해서 초등학교에 갈 때도 난 가끔씩 쪽지편지를 써서 가방에 슬며시 넣어놓기도 했다. 

딸은 무슨 큰 선물이라도 받은 듯 은근슬쩍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 생활하는 아이. 태중일기는 가는 곳마다 책꽂이에 꽂아 놓는다고 한다.

그리고는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양 귀하게 간직한다는 말을 했다. 힘들 때나 엄마가 보고 싶을 때, 태중일기를 읽다보면 마음의 링거를 맞은 듯 에너지가 생긴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아이에게 있어서 태중일기는 자존감을 높여주는 최고의 선물인 셈이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기에 입가에 웃음꽃이 사시사철 피어 있는 아이. 늘 에너지가 넘치고 밝고 긍정적인 아이. 따뜻한 감성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샘솟는 아이로 자라준 것이 참 감사하다.

검은콩만 했던 아기가 지금은 나보다 손도 크고 키도 훨씬 큰 아가씨가 되었다. 함께 여행도 다니고, 가끔은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도 한다. 보름달 아래, 두 손 꼭 잡고 걸을 땐 마음 잘 통하는 친구 같다.

때로는 아이와 생각의 방향이 달라서 서로 갈등이 있을 때도 태중일기는 마음의 무지개다리가 되어 주곤 했다.

생일날이나 어버이날 같은 특별한 날엔 선물과 함께 꼭 편지를 써주는 마음 따뜻한 아이. ‘엄마 딸로 태어나서 감사하고 엄마 딸이라서 행복하다’며 ‘나도 나중에 엄마 같은 엄마가 될래요’ 하는 편지는 언제나 나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훗날 아이가 성장해서 어른이 되면 결혼을 하고 임신도 하겠지. 그러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나처럼 아기를 위해 태중일기를 쓰게 되겠지.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로 살아갈 나의 손녀를 상상해 볼 수 있는 이 순간이 참 감사하다.

<천애란 시낭송가/울산재능시낭송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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