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塘이 시집 선보이던 날
松塘이 시집 선보이던 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2.0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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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호(雅號) 얘기를 꺼내면 고개 갸웃거릴 이가 의외로 많을지 모른다. 사실 필자도 최근까진 그랬다. 엊그제 넌지시 아호를 여쭈었더니 ‘松塘(송당)’이라 했다. 유래가 궁금했다. “옛날 송정 우리 집에 소나무하고 연당(蓮塘)이 있었지. 그래서 아호는 ‘소나무 松’자 하고 ‘못 塘’자를 합쳐지었지.” 아호 松堂의 주인공은 울산예총회장, 북구문화원장을 비롯해 듬직한 직함이 한 아름도 더 되는 시인 박종해(朴宗海, 77) 선생이다. 그가 말한 ‘송정 우리 집’이란 한옥 명가로 이름났던 북구 송정동의 ‘양정재(養正齋)’를 가리킨다. 지금은 아파트 개발로 같은 마을 고헌(固軒) 박상진 의사(‘광복회 총사령’ 지낸 울산의 독립운동가, 1884∼1921)의 생가 바로 근처로 옮겨와 다시 짓는 작업이 한창이다. (그는 고헌의 7촌 조카다.)

지난 11월 30일은 박종해 시인을 위한 날이었다. 저녁 6시 무렵, 울산문화예술회관 구내식당 ‘쉼터’는 지인과 문단후배들의 체온이 서서히 냉기를 압도해 갔다. 눈대중 가늠으로도 백 이십은 거뜬해 보였다. 수군거리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인심 안 잃은 걸 보니 참 대단해.” 울산연예인협회 노회원이 뿜어내는 색소폰 선율도 객석 분위기를 데우는 데 한 몫 했다. 피날레 곡은 배호가 부른 박 시인의 애창곡 ‘영시의 이별’. 무대 벽면에 가로로 내걸린 현수막의 행사명을 다 읽어 내리는 데는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했다. <박종해 시인 울산문협… 입회 50주년 기념 시집 [사탕비누방울] 출판기념회>. 울산문인협회 가입날짜가 1968년 11월 22일이니 입회 50주년이 막 지나갔고, 그동안 펴낸 시집만 해도 벌써 12번째 출판이다. 축사와 격려사가 이어졌다.

울산중·고 사제지간이라는 이충호 울산예총 회장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박종해 시인을 60년대 울산 문단에 낭만의 시대를 연 시인’이라 추켜세운 그는 박 시인의 초창기 시(詩) ‘탱자’와 ‘비밀’을 떠올리며 그 나름의 의미도 부여했다. 뒤이은 순서는 김선학 문학평론가 (동국대 명예교수)의 특강. 2년 연하이면서도 오래 전 박 시인의 아량 덕분에 나이를 떠난 허교(許交)를 허락받고 ‘절친’으로 지낸다는 그는 시인의 인간적 면모도 부각시키려고 애썼다. ‘시인이자 애주가로서 경험한 일화’도 그의 강연에 삽지처럼 끼어들었다.

그가 낭송한 ‘개그’란 제목의 시는 좌중의 시선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갑자기 몸이 흔들리고/ 내가 사는 아파트 십층이 어질어질 할 때/ 나는 장식장 위의 큰 술병을/ 나도 모르게 끌어안았다/ 인삼주, 영지버섯주, 하수오주/ 공룡의 꼬리가 후려치며 지나가듯이/ 지진이 우리 아파트를 빠져 나갔을 때/ 아내가 나를 보고 웃었다./ “마누라보다 술병이 더 좋은가베”/ 만약에 내가 술병을 끌어안고/ 콘크리트 파편에 맞아 죽었다면/ 신문에 무엇이라고 날까/ [삼류시인, 술병을 끌어안고 죽다]>

사실 필자가 아는 박종해 시인은 술을 무척 좋아한다. 그러나 그 설명만으론 부족하다. 술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12번째 시집(詩集)을 선보이던 날도 그랬다. 망년지교(忘年之交)를 맺은 김선학 평론가의 강연이 30분을 넘기면서 프로그램 전체가 흐트러졌다. 이를 의식한 박 시인은 당신에게 주어진 ‘작가의 변’ 순서를 전격 생략하는 용단을 내린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음식 상할라, 식사부터 하이소.” 하객들은 자신보다 좌중을 먼저 의식한 것으로 해석했다.

작가의 변을 그의 시집 말미에서 끄집어내 본다.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의 시가 천여 년 회자되어온 연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시의 진정성에서 비롯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진실과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는 쭉정이 같은 시를 모아 시집을 내고 나니 자괴감이 앞선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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