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걷는사람
나.걷는사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1.29 21: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마 전에 울산 시청자 미디어 센터에 갈 일이 생겼다.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 갔다. 처음은 자가용을 타고 갔고 두 번째는 버스를 이용했다.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두 번 모두 버스를 탔다. 우리 동네에서 시청자 미디어 센터로 가는 버스 노선을 검색하니 환승을 한 번 해서 가는 것이 배차 간격이 넓은 버스를 타는 것보다 수월해 보였다. 갈아탄 버스가 명촌교를 지나자 낯익은 풍경이 보였다. 얼른 버스에서 내렸는데 아뿔싸, 센터 건물이 아스라이 멀다. 버스 정류장 이름이 센터가 아니다 보니 한 정류장 미리 내려 버린 것이다.

정한 시간에 닿지 못할세라 잰걸음을 걷는다. 가로등이 어슴푸레 비치는 보도블록이 깔린 길은 폭은 일단 넓다. 허나 나 같은 보행자는 전혀 없다. 저녁 일곱 시가 조금 안 되는 시각임에도 말이다. 보행로 옆은 나무가 많다.

공원처럼 울창하게 가꿨지만, 어둠 속에 잠겨 경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보행로 곁으로 수로가 보이는데 어둠 속이라 더 깊고 음산한 것이 금방이라도 날짐승이 나올 것만 같아 마음을 옥죄었다.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자전거 때문에 괜히 놀라기도 하면서 걷다 보니 저 앞에 버스 정류장 표시가 나타난다. 버스로 치면 한 정류장을 걸어서 온 셈이다. 버스 정류장 이름을 울산 시청자 미디어 센터라고 고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센터는 도로 건너편이다. 횡단보도를 찾는 내 눈길에 가당찮은 도로 체계가 보인다. 센터 쪽 길로 직접 건너는 횡단보도는 없고 사거리를 중심으로 세 군데만 건널목이 설치된 희한한 구조. 미디어 센터를 가려면 건널목을 세 번 건너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길 하나를 가로지르면 될 길을 빙 둘러 가야 했다. 길을 건너느라 허비한 시간만큼 모임에 늦고 말았다. 보행자를 생각했다면 어찌 횡단보도를 저런 식으로 설치했을까.

역시 보행자를 배려하지 않는 교통 체계는 우리 동네든 남의 동네든 가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문득 중구 시계탑 사거리의 건널목이 생각났다. 한 번의 신호에 보행자가 원하는 방향 어디든 갈 수 있는 횡단보도 말이다. 모든 사거리에 이런 횡단보도를 설치할 수는 없겠지만 미디어 센터 사거리의 횡단보도는 아쉬운 대목이다.

우리 동네 길 중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길은 삼거리가 교차하는 곳이다. 그곳은 어느 회사의 사택 입구와 주택이 서로 마주보는 곳이다.

두 대의 차가 겨우 지나다닐 만한 도로 폭이다 보니 자연스레 보행자는 길 가장자리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목표하는 방향으로 가려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잽싸게 발걸음을 떼야 한다. 살펴야 하는 방향이 서너 군데이다 보니, 걸음을 떼는 내 발길이 자꾸 끄트머리를 향한다. 차가 오지 않아도 보행자의 길은 가운데가 아니다. 자동차 전용 도로도 아닌 길인데 보행자는 길 끝으로 밀려난 것이다. 물론 차도와 보도의 경계는 노란 선으로 표시해 놓았다.

차도 옆의 보행로는 한 사람이 겨우 걸을만한 폭이다. 좁디좁은 보행로에는 몇 미터 간격으로 맨홀이 보인다. 결국, 보행자 도로는 하수가 흐르는 곳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맨홀 뚜껑 창살을 뚫고 하수구 냄새가 올라와 걷는 기분을 망치기 일쑤다. 또한, 맨홀 뚜껑의 재질이 쇠라서 비라도 오는 날에는 미끄럽기까지 하다. 되도록 이 도로를 지나지 않으면 된다지만 구역을 가로질러 가는 다른 길은 없다. 그러니 다닐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고 볼멘소리를 하고 만다. 신호를 기다리는 자동차 옆을 걷다가 사이드미러가 닿아 화들짝 놀랄 때도 많다. 경적을 울리는 차들의 기세에 눌려 종종걸음으로 도로를 벗어나기도 한다.

이 복잡한 도로를 일방통행로로 만들고 차도의 반을 보행자가 다니는 길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은 그저 공상일 뿐일까? 자동차가 다니는 구불구불한 도로는 직선으로 바뀌지만, 동네를 가로지르는 보행자를 위한 지름길은 거의 생기지 않는다. 걷는 사람은 알아서 걸어 다니라는 뜻인가.

요즘 시청에서 태화 로터리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중앙 녹지대가 있다. 나무와 관목을 심어 설치하는 따위의 도로 체계를 보면서도 마찬가지 생각이 든다. 새롭게 설치한 중앙 화단이 과연 보행자를 배려한 체계인지 헛갈린다.

건널목이 많이 설치되었다는 느낌보단 무단 횡단을 막으려는 방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보행자보다 자동차의 원활한 통행과 미관을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 어르신들이 많이 다니는 신정시장 주변에 특히 건널목이 많이 설치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일부러 도로의 가운데를 차지하고 걷기도 한다. 금세 자동차의 경적이 울리거나 자동차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자동차보다 약한 나는 비켜설 수밖에 없다. 속도를 올리는 자동차 꽁무니를 바라보며 그저 한숨을 쉴 수밖에 없는 나는 걷는 사람. 당당하게 길 가운데로 걷고 싶은 보행자다.

<박기눙 소설가>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