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솔기념관과 외솔 한옥도서관
외솔기념관과 외솔 한옥도서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1.28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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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필자가 소개하는 관광지는 울산의 관광지 중 한 곳이다. 다른 독특한 점이 있다면 바로 실존인물이었던 외솔 최현배 선생에 관한 곳이며, 그의 지고지순한 한글사랑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그는 울산이 배출한 유능한 한글학자로서 한글지킴이는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인으로서의 시대적 사명을 훌륭하게 수행해냈다.

외솔 선생은 울산 중구 병영에서 태어나 병영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 총명하다는 소문이 자자했고, 학업에 정진할수록 지식이 쌓여 갔다. 1910년 관립 한성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주시경 선생을 만나 “국어는 민족정신의 형성 기반이자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본질”이라는 강의에 크게 감동받았다.

일본 히로시마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외솔이 1920년~1921년 동래고등보통학교에서 조선어를 가르치면서 마땅한 조선어 교재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직접 교재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국어의 어법 및 문법에 관한 ‘우리말본’의 초고가 되었다. 해방 후에도 그의 한글사랑은 꾸준히 이어졌다. 세로쓰기에다 한문투성이의 글과 문장이 대부분이던 시절에 그는 한글전용과 가로쓰기를 앞장서서 주장했다.

지금 우리는 가로쓰기가 기본이고, 한글을 자유롭게 쓰고 있기에 공기가 귀한 줄 모르듯 그 가치를 모르고 폄훼하는 은연중의 행동이 많지는 않은지 살펴볼 일이다. 영어가 들어간 ‘콩글리시’와 외래어의 남발은 한글을 알게 모르게 평가 절하하는 것은 아닌가. 텔레비전의 자막에는 신조어가 남발되고, 문법에 맞지도 않은 한글파괴가 극심해도 우리는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외솔은 한자와 일본어투성이인 일상용어를 한글로 바꾸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그는 직경(直徑)→지름, 반경(半徑)→반지름, 사사오입(四捨五入)→반올림, 능형(菱形)→마름모에서 보듯 어려운 한자어를 한글로 바꾸었다. 또한 후미끼리→건널목, 벤또 →도시락, 젠사이→단팥죽, 혼다대 →책꽂이, 간스메 →통조림에서 보듯 마구 쓰이던 일본어를 아름다운 우리말로 바꾸었다. 짝수, 홀수, 세모꼴, 덧셈, 뺄셈 같은 순우리말도 직접 만들어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해서 백성들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다면 외솔 선생은 나라 잃은 백성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인 한글을 계승해서 물려주었다. 이 한글을 아끼지 않는다면 말뜻을 다르게 해석하는 까닭으로 우리는 다음 세대에 더 많은 불통을 겪을 것이고, 통일이 됐을 때 남북한의 어문에 대한 차이가 생기고 한글에 대한 이해가 달라 막대한 정신적·금전적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나라의 주권을 상실했던 일제강점기의 냉혹한 현실에서 조선말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일본어가 한반도를 뒤덮던 그때 외솔은 펜을 그러쥐고 나라의 미래를 그리면서 한글 연구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데 그의 일생을 걸었다. 조선어학회 수난사건으로 3년간 옥살이를 했던 외솔 앞에 조국의 광복이 선물처럼 다가왔다.

그때도 그의 지향점은 애오라지 한글사랑이어서 교과서를 집필하는 데, 교육자로서 후진을 양성하는 데 온갖 정성을 다했다. ‘한글이 목숨’이라는 신념을 굳건히 지켰던 외솔은 일평생 20여 권의 책을 지어 국민들을 깨우치는 한편 국어학자로서 한글 발전을 위해 애쓴 선각자였다. 외솔기념관에 가서 외솔의 한글사랑을 깨닫고, 우리에게 선물로 그저 주어진 한글을 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보다 유의미한 일은 없을 것이다. 또 외솔을 기념해서 새로 지은 한옥도서관에서 짧은 시간이라도 자녀들과 함께 책 읽는 모습을 가진다면 그 또한 멋진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박정관 굿뉴스울산 편집장/ 울산누리 블로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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