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암 공원의 길고양이 가족
대왕암 공원의 길고양이 가족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1.2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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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살 좀 빼려고 걷기 운동을 많이 하고 있다. 굳이 다이어트가 아니라도 원래 걷는 걸 좋아한다. 보병 출신에다 걸으면서 사색하는 걸 좋아하는데 걷는 그 곳이 경치까지 좋으면 운동도 하면서 힐링까지 덤으로 얻는다.

한 동안 집 근처 명덕호수공원을 참 많이도 걸었더랬다. 울산에 있는 호수공원 가운데는 경치가 가장 좋다고 자부하는 곳인데도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그동안 많이 무감각해졌다. 해서 요즘은 쉬는 날이면 버스비가 좀 들더라도 버스를 타고 방어동 꽃리단길까지 가서 해안길을 주로 걷는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여기 예술이다. 이 동네가 원래 골목 끝에 바다가 있는 낭만적인 동네인데 걷다 보면 더 멋진 풍경들과 계속 만나게 된다.

꽃리단길에서 시작해 외국인 특화거리를 지나면 슬도 방향의 길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여기서 부터가 엑기스다. 물론 그 전에도 계속 바다는 따라다닌다. 이 동네가 좀 멋지다니까. 아무튼 슬도로 빠지지 않고 벽화가 그려져 있는 어촌 작은 마을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드디어 탁 트인 해안산책길이 등장한다. 가본 사람들은 머릿속에 그 모습이 그려질 테지만 안 가본 사람들에게는 사진이라도 보여주고 싶은 심정이다. 울산에 존재하는 길 가운데 아마 가장 예쁠걸?

어쨌든 여기에 와보면 공업도시 울산이 관광도시로서의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아무튼 해안산책길 안에 있는 오토캠핑장 등을 통과하고 나면 최종 목적지와도 같은 대왕암공원으로 들어서게 된다. 공원 안에서는 보통 대왕교가 있는 대왕암광장을 빠져나오는 오르막길을 탄다. 그런데 이곳에선 조금 독특한 풍경을 하나 만날 수가 있다. 이 오르막길에는 유독 길고양이들이 많이 있다는 것. 솔직히 이 길을 지날 때마다 길고양이를 만나지 않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은 길 양쪽 사이드의 풀숲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10마리가 넘는 고양이들이 그곳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압도적인 그 숫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고양이들이 반상회를 하는 건가라는 우스개 생각이 잠깐 들 즈음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새끼 고양이들이 제법 많았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아마도 어미 고양이들이 그냥 데리고 나왔는가 싶었는데 그 오르막길을 통과하고 한참 뒤에야 머릿속에 뭔가 번쩍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그 길에서 그들은 생계를 해결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러니까 관광객들이 지나가면서 귀엽다고 던져주는 음식들을 통해 먹고 살고 있었던 것. 고양이가 공장을 돌리거나 논밭을 갈 수는 없는 만큼 대왕암공원의 길고양이들은 쓰레기봉투를 뒤져야 하는 다른 길고양이들보다 나름 현명하게 먹고 살고 있었던 거다. 거의 비즈니스 수준이다. 귀여움을 더 많이 받는 새끼고양이들을 대동한 것도 그런 이유일지도. 어쨌든 가족이 똘똘 뭉쳐 그렇게 잘 버티고 있었던 거다.

사실 어디서든 길고양이를 보면 늘 그런 생각이 든다. ‘잘 버티고 있구나.’ 얼마 전에 봤던 그 길고양이를 오늘 다시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한다.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을까. 이제 겨울인데. 그런데 열혈 시민도 아닌데 대왕암 공원의 길고양이 가족들을 만난 그날은 이상하게도 ‘울산의 긴 겨울’이 오버랩 됐다.

사실 울산이 겨울왕국이 된 건 꽤 오래됐다. 조선업 불황으로 시작된 경기침체는 최근 자동차까지 엎치면서 최악의 상황이 몇 년 동안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울산시민들도 길고양이들처럼 지금 버티고 있는 셈. 그래도 그날 대왕암공원의 길고양이 가족을 통해 작게나마 희망을 느꼈다면 나의 지나친 낭만일까. 바램인건 알지만 춥든 덥든 대왕암공원 길고양이 가족들의 비즈니스가 계속될 건 분명하지 않을까. 또 그것만으로도 희망이지 않을까.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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