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스님과 사르트르-‘달마야 놀자’
큰 스님과 사르트르-‘달마야 놀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1.22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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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개봉한 <달마야 놀자>를 많은 이들이 코미디 영화로 기억하지만 이 영화는 코미디적인 요소 말고도 아주 묵직하고 깊은 철학적 메타포(은유)로 관객들을 껴안아주고 있다.

영화의 감동도 사실 거기서 철철 흘러넘치는데 처음 이 영화를 보면 무작정 웃게 되지만 웃음의 신선도가 떨어지게 되는 두 번째부터는 더욱 커 보이는 감동과 철학적 메시지들로 인해 표정은 다소 진지해질 수밖에 없다.

어찌됐든 감동과 철학적 메시지의 중심에는 바로 큰 스님(김인문)이 계신다. 조직폭력배로 속세에서 대형 사고를 친 뒤 경찰을 피해 산세 깊은 절로 도망 오게 된 재규(박신양) 일행은 막무가내로 절에 눌러 앉는다. 큰 스님 다음의 절 넘버2인 청명(정진영) 이하 스님들은 당연히 그들을 싫어할 수밖에 없었고, 조폭들로 인해 점점 난장판이 되어가는 절 꼬라지를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폭들을 쫓아내기 위해 스님들은 내기를 제안하게 된다. 첫 게임은 삼천배였고, 두 번째는 고스톱, 세 번째는 물속에서 숨 오래참기, 네 번째가 삼육구였다. 결과는 2:2 무승부.

그러자 다시 서로 으르렁댔고, 마침내 큰 스님이 나서게 된다. 큰 스님은 밑이 빠진 독 두 개를 준비시킨 뒤 10분 안에 거기에 물을 가득 채우는 쪽이 이기는 게임을 제안한다. 조폭들이나 스님들이나 별 짓을 다해보지만 밑 빠진 독에 물이 가득 찰리는 없었다. 그런데 10분이 다 되어갈 즈음 뭔가 깨달음을 얻은 두목 재규는 동생들에게 독을 들게 한 뒤 연못으로 가서 집어던지게 한다. 그리고 독을 눌렀더니 독 안에는 비로소 물이 가득 찼다. 조폭들이 이긴 셈이다.

공식적으로 절에 눌러 앉게 된 조폭들은 이후 갖가지 사고를 치게 된다. 가장 큰 사고는 청소랍시고 하다가 불상을 넘어뜨려 부처님 귀를 작살낸 것. 넘어갈 수가 없었던 스님들은 큰 스님에게 그걸 꼬지르지만 오히려 큰 스님으로부터 호통을 듣는다. 큰 스님 왈 “부처님 귀가 떨어졌으면 다시 붙이면 되는 거 아니냐. 너희들 눈에는 그게 부처님 귀로 보이냐? 그게 아니라면 법당의 불상이 부처님으로 보이든? 그것도 아니라면 너희들은 지금까지 나무토막을 섬겼어? 못난 놈들 같으니라구. 너희들 마음속에 부처가 들어있거늘 그깟 불상의 귀하나 떨어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

마침내 두목 재규는 함께 산책을 하며 큰 스님에게 묻는다. 자신들을 감싸주시는 이유가 뭔지. 혹시 자신들이 착해지기를 바라서 그러시는 거냐고. 그러자 그게 그렇게 궁금하냐며 큰 스님은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울 때 너는 어떤 생각으로 했냐”고 되레 묻는다. 재규는 “그건 그냥 항아리를 물속에 던졌습니다”라고 답하게 되고, 그의 대답에 큰 스님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나도 밑 빠진 너희들을 그냥 내 마음속에 던졌을 뿐이야.”

이쯤이면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던지는 감동 정도는 어느 정도 느꼈을 거라 생각된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철학적 메시지로 들어가보자. 관련해 영화 속 큰 스님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서양 철학자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실존주의 철학을 선두에서 이끈 ‘장 폴 사르트르’다. 사르트르는 우리 인간이란 존재를 “그냥 아무 의미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라고 봤다.

실존주의란 본질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실존주의 전까지 모든 인간에겐 공통된 본질, 즉 본성이 있다고 믿었다. 플라톤의 이데아(시공을 초월하는 영원하고 참다운 실재)에서부터 시작된 본질은 실존주의에 의해 비중이 급격히 줄어들고 만다. 대신 개별자로서 지금 실제 존재하는 모습이 더 중요하다고 본 게 바로 실존주의다. 쉽게 말해 조폭은 조폭이고, 스님은 스님일 뿐이라는 것. 그 둘 사이엔 같은 인간으로서 공통된 본질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조폭으로서, 스님으로서의 지금 삶이 더 중요하다고 봤던 거다.

사실 실존주의 등장 전까지 인류의 철학은 늘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인간이 이데아, 즉 참된 본질에 다다를 수 있게 하는 게 철학의 목적이었던 것. 하지만 실존주의는 ‘그냥 그렇다’였다. 같은 스님이지만 큰 스님과 청명 간의 차이점도 여기에 있었는데 청명은 그래야 하기 때문에 “조폭은 절대 안 된다”고 봤지만 큰 스님은 그들이 내기에서 이겼기 때문에 “조폭이라도 그냥 계속 있어라”였다. 그렇게 마음속에 그냥 던졌던 거다. 우리가 그토록 해답을 원하지만 그분(神)은 아직 아무런 대답도 없다. 하니 어쩌면 우리는 진짜 이 우주에 그냥 내던져진 존재일지도. 뭐. 그랬거나 말거나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될 것 같다. 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지.

2001년 11월 9일 개봉. 러닝타임 95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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