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식량자원 곤충은 농촌의 신성장 동력”
“미래 식량자원 곤충은 농촌의 신성장 동력”
  • 김정주
  • 승인 2018.11.2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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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암 울산곤충산업협회 회장국민에겐 고단백질 영양식, 농민에겐 블루오션선입견 벗어나 곤충요리지도사 과정 개설 시작곤충산업은 걸음마 단계… 섣부른 낙관은 금물
고암 울산곤충산업협회 회장이 식용곤충의 사육기술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고암 울산곤충산업협회 회장이 식용곤충의 사육기술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낸 분들이라면 서로 공유하고 싶은 추억이 있을 것이다. 논바닥을 헤집으며 잡은 메뚜기를 풀줄기에 꿰거나 산자락에서 잡은 방아깨비로 방아질 흉내를 내던 신나던 추억도 그 중의 하나. ‘곤충의 식용화’는 그때만 해도 생활 속에 자연스레 녹아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역대급 폭염이 망친 비닐하우스 사육

비닐하우스 온도가 섭씨 45도 문턱을 기웃거리던 지난여름, 살인적인 폭염은 숱한 것들을 무력화시켰다. 리모델링이 한창인 부회장 김경진(농업회사법인 부르메 대표) 씨의 농촌주택에서 빤히 내려다보이는 중구 성안동 주연마을 텃밭 한 귀퉁이의 비닐하우스도 폭염의 위력 앞에 무력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 16일 오후에 들여다본 비닐하우스 내부는 집중포격을 당한 군 지휘부처럼 기능이 거의 마비된 상태.

“에어컨을 틀어도 불가항력이었습니다.” 곤충농사를 김 부회장과 같이 짓고 있는 고 암 울산곤충산업협회 회장(68)의 말이다. 생육시기에 30도를 웃도는 고온이 두 달 가까이 계속된 ‘역대급 폭염’에 곤충농사에 매달린 농군들은 두 손, 두 발을 다 내려놓아야 했다. 설치비가 평당 20만원씩 들어갔다는 비닐하우스는 거죽만 남았고, 30평에 월 50만원씩 들어갔다는 냉난방비는 폭염의 위세에 눌려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고 했다.

“하우스 수고(지붕높이)를 높이고 단열시설도 했어야 했는데… 치사온도를 넘어서면 산란이고 부화는 기대조차 할 수 없거든요.” 그는 경험부족에 따른 ‘호된 신고식’을 솔직히 시인했다. 체험농사로는 4년 전부터 작년까지 3년간 아파트에서 시험 삼아 길러본 게 고작이었던 그에게 노지텃밭의 곤충농사는 애초부터 무모한 도전이었는지 모른다. 비록 ‘자연’이란 큰 바위에 맨몸으로 부딪히다 보니 쓰린 경험이야 맛보았지만, 얻은 교훈도 적지 않았다.

지난 3월 입식을 시작한 이후 애지중지 돌본 곤충은 생육기간이 50~60일인 귀뚜라미와 풀무치(40∼50일), 벼메뚜기(60∼80일) 등 3가지. 귀뚜라미 2만 마리, 메뚜기 난괴(卵塊) 30덩이(3만 마리 분량)와 농촌진흥청에서 분양받은 난괴 50덩이가 기록만 남기고 사라졌다.

-회원 51명 ‘인생2모작’ 꿈 실현 도와

그래도 그의 사전엔 ‘좌절’이란 단어는 없다. 51명 회원의 ‘부농에의 꿈’이 몽땅 걸린 프로젝트인 까닭이다. ‘농업인의 날’에 맞춰 ‘제21회 울산농업인대회‘가 열린 지난 11일, 태화강 남쪽 둔치의 목 좋은 입구 쪽에 ‘곤충식품전시관’ 부스 2개를 장만한 것도 실은 그런 꿈의 실현 의지 때문이기도 했다. 고 회장이 부스를 설치한 경험은 이번이 네 번째.

이날 부스 운영을 도왔던 회원들에게 ‘꿈은 이루어진다’는 신념을 안겨준 것은 의외로 많이 찾아온 시민들이 전해준 ‘긍정의 힘’이었다. “곤충가루로 만든 빵과 부추전이 큰 인기였지요. 시식해 보신 분들은 식재료가 곤충인 줄 알면서도 참 맛있어 하십디다.” 자주 접하면서 생긴 인식의 변화가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드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았다.

‘밀웜(mealworm)’으로 불리는 갈색거저리 유충(일명 ‘고소애’)도 인기식품의 하나. 그러나 울산에 전문 사육농가가 없는 경우 전시관을 차릴 때마다 외지에서 사오거나 나비표본 액자 같은 것은 빌려와야 하는 어려움이 따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전시관 운영이 회원들에게 곤충농사의 가능성을 눈으로 확인시켜 준 것만은 틀림이 없지 싶었다. 행사 당일 부스에서 잠시 마주친 이상하 씨(북구 산업로, 창평동)가 100평 남짓한 자기 땅에서 곤충농사를 좀 더 규모 크게 짓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도 이날의 체험이 자극제가 됐는지 모른다.

-‘곤충요리지도사’ 과정 개설한 중구

울산 중구청이 지난달 11일 흥미로운 보도자료를 하나 냈다. “미래 혁신교육의 일환으로 ‘곤충요리지도사’ 과정을 개설한다”는 소식이었다. 10월 23일∼1월 29일 ‘울산·경남 지역 최초’로 열리는 이 강좌는 사이 매주 화­목 두 차례씩, 모두 12차례에 걸쳐 대구가톨릭대 교수진과 한국곤충산업연구개발원 강사진이 책임을 맡아 신뢰도가 높은 편.

여기서 특별히 눈길 가는 대목이 있다. “이번 강좌는 2010년에 제정된 ‘곤충산업 육성·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보듯 미래식량으로 각광받는 곤충을 제대로 알고 곤충으로 요리를 만들어봄으로써 선입견을 없애고…”라는 대목으로, 곤충을 ‘미래식량’으로 본 것이다. 16명 모집에 58명이 지원해 3.6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는 후문도 따른다. 곤충산업이 ‘블루오션’으로 자리 잡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조짐일까?

‘식용곤충’에 대한 밝은 전망은 농업인의 날, ‘곤충식품전시관’에서 나눠준 (주)부르메의 홍보전단에도 잘 나와 있다. ‘국민에게는 고단백 영양식을 제공하고, 농민에게는 탄탄한 미래 성장동력이 되는, 안전하고 깨끗한 먹거리’라는 것.

하지만 고 회장은 섣부른 낙관을 경계한다. 우리나라의 곤충산업이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한 진단은 발품을 팔며 전국을 수도 없이 누빈 체험 과정을 통해 얻은 결론으로 보인다.
 

고암 울산곤충산업협회 회장과 회원들이 지난 11일 태화강 둔치에서 열린 제21회 농업인의 날 맞아 설치된 울산곤충산업협회 행사부스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암 울산곤충산업협회 회장과 회원들이 지난 11일 태화강 둔치에서 열린 제21회 농업인의 날 맞아 설치된 울산곤충산업협회 행사부스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양이·강아지 간식사료로도 인기

“현재 식용곤충의 인공사육을 선도하는 곳은 농촌진흥청만한 데가 없지요.” 고 회장의 말이다. 희망 농가에 대한 사육기술 이전도 꾸준한 편. 그렇다고 농진청의 기술이전이 곧바로 부농(富農)의 길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풀무치 사육농가는 전국에 3군데밖에 없고. 메뚜기 사육농가는 14군데는 되지만 성공사례로 회자되는 농가는 1군데뿐인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일까? 메뚜기와 풀무치는 술안주용으로 그저 그만이지만 생산은 절대부족이라는 것이 고 회장의 귀띔이다. “술안주 시장 형성이 잘 안 되는 건 풀무치나 메뚜기의 생산이 불안정한데다 지속적이지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의 말의 행간을 읽으면 식용곤충 사육이 ‘시장 확보’와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육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시장 확보에 실패하면 성공사례로 남기 힘들다는 얘기다.

흥미로운 것은,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앞서 예로 든 ‘술안주’ 사례가 암시하듯, 수요는 많아도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다. 이때 수요의 주체는 사람이 아닌 애완동물일 때가 많다. 식용곤충이 파충류·조류 또는 수족관 고급어류의 사료(먹이)로도 각광받고 있다는 것. 그밖에 또 더 있다. “간식사료인 식용곤충을 고양이도 잘 먹지만 강아지는 더 좋아한답니다.”

-대안 찾아 중국 청도대학도 방문

농진청에서 기술을 이전받았다 해도 초기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사육농가 증가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고 회장은 그 나름의 대안을 찾기 위해 골몰할 때가 많다. 필요하면 중국 방문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 4월에는 4박5일간(4.9∼13) 농진청 방문단에 합류해 식용곤충 연구에서 몇 발 앞서가는 중국 산서성 농대와 청도대학 그리고 식용곤충 사육 농가를 차례로 둘러보고 왔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확장성이 있고 비용이 적게 드는 비닐하우스 설치, 쉽게 사육할 수 있는 기술, 이런 것들을 찾아서 우리 회원들과 공유하는 것, 이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요.”

울산곤충산업협회 회원과 같이하는 견학과 연수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그런 생각과 무관치 않다. 9월 8일~10월 14일 사이에는 10차례 50시간에 걸쳐 ‘곤충전문가 양성반 기초교육 과정’을 중구 우정동 마제스타워 3층 교육장에서 운영하기도 했다. 12월 1일에는 회원들과 함께 서울 광진구의 한 농가를 찾아가 동충하초의 종균배양·생육 현장 탐방에 나설 계획이다.

식용곤충 사육의 불모지 울산을 개척자 정신으로 일구어 온 고 암 회장. 그에 대한 호칭은 이미 ‘사육농민’ 수준을 넘어 해박한 지식을 무기로 삼는 ‘강사’의 경지에 도달해 있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저의 재능을 기꺼이 기부할 생각입니다.”

글= 김정주 논설실장·사진= 장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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