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교육은 ‘바보 책장 넘기기’
한자교육은 ‘바보 책장 넘기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1.1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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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초등학생이 “안중근 의사가 어느 병원 의사예요?”라고 물어봤단다. 안중근 의사가 義士(의사)인지 醫士(의사)인지 구분하지 못한 탓이다. 한글전용을 하면서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한 탓이다. ‘울산모비스 농구팀 3연패하다’ 하면 연달아 세 번 졌다(連敗)는 소리인지 연달아 세 번 우승했다(連覇)는 뜻인지 알 수가 없다.

한자를 배울 때는 힘들어도 익히고 나면 너무 편리하다. 한자 천자를 익히면 단어 오천 개가 저절로 이해된다. 우리나라 언어의 70% 이상이 한자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과서에 나오는 단어는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다. 한자음과 뜻을 알면 문장의 맥락을 이해하기 쉽다.

초등학생이 민중봉기라는 문장을 접할 때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한자를 배운 학생은 봉기가 벌 봉(蜂)자 일어날 기(起)자란 걸 알면 벌통을 건드렸을 때 벌떼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것을 상상하면 금방 이해할 것이다. ‘바보 책장 넘기기’란 말이 있다. 일반인들은 오른손에 침을 바르고 오른손으로 책장을 넘긴다. 그런데 바보는 오른손에 침을 묻히고 왼손으로 책장을 넘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자교육이 그렇다. 헌법 1조 ‘대한민국(大韓民國)은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이다’에서 보듯이 나라의 근간이 되는 헌법은 한자어로 쓰고 국어교육은 한글전용으로 한다. 이것이야말로 ‘바보 책장 넘기기’ 아닌가.

한자는 어린이 두뇌 개발에 중요한 작용을 한다. 최근 한 연구에 의하면 ‘우리말 소리글자를 볼 때 좌뇌만 활성화되고 뜻글자를 볼 때는 그림으로 인식하여 좌뇌와 우뇌가 동시에 활성화된다’고 한다. 한국의 어느 학자는 일본의 과학부문 노벨상 수상자가 23명인 반면 한국은 한명도 없는 이유에 대해 “한자 사용 유무가 이런 차이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현미경에는 접안렌즈와 대물렌즈가 있다. 시험문제에 ‘눈에 가까이 있는 렌즈는 어느 렌즈인가?’하고 물으면, 한자를 배운 학생은 ‘이을 접(接)’, ‘눈 안(眼)’이라고 쉽게 정답을 맞출 수 있다. 그런데 한자를 모르면 생판 접안렌즈와 대물렌즈를 외워야 한다. 억지로 외운 것은 쉽게 잊어버린다. 우리나라 과학 관련 책들은 특히 한자어를 많이 쓴다. 이런 차이가 ‘23대 0’ 결과를 의심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 노벨상은 간절히 바라면서 한자교육은 반대하는 ‘바보 책장 넘기기’다.

2016년 8월 24일 교원대 교원문화관에서 ‘초등학교 한자교육 활성화를 위한 공청회’가 개최되었다. 국한문 혼용 반대론자들은 한국어를 표기하는 데 있어서 한글 이외의 문자를 사용하면 독립국가로서의 체면을 구기고 민족혼이 더럽혀지는 일이라고 했다. 로마자를 이용하여 자국어를 표기하는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게서 자기 민족이 발명하지 않은 문자로 자국어를 적는다는 사실에 대해 치욕스럽게 여긴다는 소리를 들어본 바 없다.

또한 그들은 한자교육을 반대하는 이유로 반일감정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자국의 문자에 한자를 섞어 쓰는 나라가 일본밖에 없지 않냐?”고 주장한다. ‘나라’도 우리말이고 ‘국가’도 우리말이다. 그리고 ‘나라 국(國)’자와 ‘집 가(家)’자를 알면 국가(國家)라는 한자어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되며, ‘노래 가(歌)’자를 쓰는 국가(國歌)와 어떻게 다른지 확실히 알 수 있게 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자교육을 활성화시킬 것이냐? 말 것이냐?’를 주제로 하는 공청회가 아니고, ‘한자교육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시킬 것이냐?’를 주제로 한 공청회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한자문화권이다. 또 중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다. 1, 2위국 문자인 영어와 한자를 보면 “영어교육은 너무 뜨거워서 탈이고, 한자교육은 너무 차가워서 탈”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다.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말이다. 모든 일에 중용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요즘 여름은 너무 무더워서 싫고, 지난 겨울은 너무 추워서 싫었다. 그래서 필자는 봄과 가을을 기다린다. 한자교육도 봄과 가을 같으면 좋겠다.

김기병 NCN 전문위원

前 울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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