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평등의 상징 ‘UN기념공원’
평화·평등의 상징 ‘UN기념공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1.1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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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고향 부산을 향해 묵념을 올렸다. 11월 11일 오전 11시에 맞춰 1분간…. 바로 그 시각, 예포 19발과 함께 부산 전역에 울려 퍼졌을 사이렌 소리가 울산시청 근처까지 와 닿지는 않았다. 그래도 감회는 깊었다. ‘UN기념공원’을 잠시라도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부산은 한국전쟁 기간 1천129일 중 1천23일간 피란수도’이기도 했다.

‘11월 11일 오전 11시’는 한국전쟁에 ‘유엔군’ 이름으로 참전했다가 UN기념공원에서 영면하고 있는 11개국 장병 약 2천300명의 넋을 기리는 추모행사의 하나다. ‘부산을 향하여’(Turn Toward Busan)란 슬로건이 붙은 이 ‘1분간 묵념’ 이벤트는 2007년 캐나다 참전용사 커트니 씨가 제안했고, 지금은 한국전쟁 참전 60개국 중 21개국이 같이 지켜오고 있다.

고향이 바로 옆 동네인 필자가 어릴 적에 보았던 UN기념공원(그때는 단순히 ‘대연동 유엔묘지’라고 불렀다)의 모습은 ‘초라함’ 말고는 더 붙일 표현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딴판이다. 유해가 안장된 주(主)묘역, 참전국기와 유엔기가 게양된 상징구역, 유엔군 위령탑, 전몰장병 추모명비, 추모관 등의 기념물들이 추모객들의 발길을 붙든다. 조경도 세계적 수준이다. 유엔군 참전용사 중 17세 최연소 나이로 산화한 호주 병사 도운트(J. P. Daunt) 이병의 이름을 딴 ‘도운트 수로(水路)’도 기어이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묘역의 총면적은 23만㎡. 1951년 1월 18일에 설치된 이후 1951~1954년에 걸쳐 참전 16개국 전사자 약 1만1천명이 매장된 적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나중에 그들의 조국으로 돌아갔다. 어릴 적 유리함 속에 보았던 전몰병사의 핏자국 선명한 스카프, 그리고 터키 국기 등등은 아직도 망막에서 쉬 떠나질 않고 있다.

그러나 ‘유엔묘지’ 근처에서 한국전쟁의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건물 몇몇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종전 후에도 옛 ‘수산대학교’ 구내에 남아 이따금 스친 듯 지나치기도 했던 ‘서전병원(瑞典病院=스웨덴 야전병원)’ 건물과 백사장이 바로 코앞인 ‘이승만 별장’이 바로 그것. 지금까지 보존돼 있었더라면 UN기념공원을 떠받치는 근현대사의 훌륭한 지킴이로 남아 있을 테지만 아쉽게도 더 이상 볼 수는 없다.

UN기념공원은 현재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어떤 존재로 각인되어 있을까? 그 중 하나가 유엔군의 참전 명분이기도 했던 ‘세계평화’인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다른 하나는? 필자는 주저 없이 ‘평등’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사람 위에 사람 없다’는 말이 가장 실감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UN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전사하신 참전용사 대부분이 유엔묘지에 도착한 순서대로 안장돼 있습니다. 지위고하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대통령, 독립유공자, 병사와 같은 생전의 신분이나 계급에 따라 묘역의 위치와 규모가 달라지는 현충원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로 들렸다.

하지만 어깃장을 놓아 분위기를 흐리는 이들이 더러 있어 걱정이다. 매사를 이념적 잣대로만 판단하려 들기 때문일까? 근처 몇 군데를 구경하다가 UN기념공원에도 잠시 들른 부산 S교회의 여성목회자 한 분이 SNS에 올린 글이 시선을 자극했다. “이곳은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를 빨갱이들의 손에서 지키려고 죽은 4만명의 유엔군 전사자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 곳입니다. 이런 부산에서 어떻게 그런 대통령이 나왔는지…. 주여, 이 나라를 다시 한 번 빨갱이들의 손에서 구원해주소서!”

UN기념공원을 이념의 색깔로 덧칠하지 말고 ‘평화’와 ‘평등’의 상징으로만 기억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지나갔다.



김정주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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