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되다-‘보헤미안 랩소디’
전설이 되다-‘보헤미안 랩소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1.08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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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십대가 저물어가던 시절, 그러니까 90년대 초 한 공중파 TV프로그램 가운데 <지구촌 영상음악>이라는 프로가 있었다. 가수 유열이 진행을 했었는데 당시로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프로였더랬다. 그랬다. 그 시절은 인터넷이 상용화되기 전이어서 우리 또래들은 뮤직비디오의 매력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걸 보려면 비디오테이프에 녹화된 게 아니면 이 <지구촌 영상음악>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다. 때 마침 국내 가요계에도 뮤직비디오 열풍이 불고 있었던 터라 당시 음악을 신봉했던 내 친구들의 입에서는 “그 채널에서는 <지구촌 영상음악>밖에 볼 게 없어”라는 지탄 같은 감탄이 터져 나오기도 했었다. 하긴. 그런 친구들은 보통 뉴스나 드라마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으니.

아무튼 나도 <지구촌 영상음악>을 통해 뮤직비디오의 세계로 입문하게 됐고, 그쪽으로 일가견이 있는 한 친구의 손에 이끌려 전문적으로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음악감상실’이라는 곳을 처음 가게 됐다. 이름 하여 ‘호산나’. 지금의 중구 성남동 중앙 전통시장 안에 위치해 있었는데, 당시 1층이 ‘동경음식백화점’이었고, 호산나는 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 들었던 이야기에 따르면 고임금의 석유화학공단을 다니던 사장이 음악에 미쳐 차렸다고 한다.

때는 바야흐로 대학 입학을 위해 재수를 하던 시절. 난 특히 지옥 같았던 배치고사(학력고사 시절 원서 쓰기 전 두 달 간 모의고사를 10번 넘게 몰아치는 시험) 기간에 시험이 있는 날이면 마치고 거의 빠짐없이 친구와 같이 호산나를 찾아 음악을 들으며 지친 영혼을 달랬었다.

1층에 위치한 동경음식백화점에서 당시 최고 인기 메뉴였던 돈가스를 썰고 난 후 부풀어 오른 배를 안고 영혼의 안식처로 입장했다. 당시 입장료가 아마 1천500원이었을걸? DJ가 LP판과 LD판으로 가득 차 있는 박스에서 진행을 했는데 가끔은 사장이 직접 DJ를 보기도 했었다.

그 외 DJ들은 대부분 질풍노도의 시기, 지나치게 삐뚤어지긴 또 싫은데 학업만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에 굴복하는 것도 싫어했던 아웃사이더 친구들이 주로 무임금으로 DJ를 봐줬다. 대부분 좀 생긴 애들이어서 여학생들로부터 받은 신청곡 쪽지에 적힌 연락처도 솔찬히 챙길 수 있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사실 DJ는 그 공간에서 가장 빛이 나는 존재였다. 스타가 된 것 같은 그 기분만으로도 메리트가 충분했던 것. 아무튼 거기서 그렇게 자주 들었던 곡들이 Skid Row의 ‘I Remember You’나 Gun’s n Roses의 ‘November Rain’, 혹은 Extreme의 ‘More than Words’나 Steel Heart의 ‘She’s Gone’ 등등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당시 뇌리에 깊숙히 박힌 곡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Queen의 ‘Bohemian Rhapsody(보헤미안 랩소디)’였다.

당시 처음 본 Bohemian Rhapsody의 뮤직비디오는 굉장히 어두웠다. 노래도 그로테스크(기괴한)했지만 리드 보컬이었던 ‘프레디 머큐리’가 가장 괴상했다. 촌스러운 느낌과 함께 약간 모자라 보이는 외모였던 것. ‘저 아저씨 뭐야’라는 생각이었지만 노래만은 들으면 들을수록 중독성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 뒤 난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에 걸려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고, 세계적인 팝과 록스타들이 대거 모여 프레디 머큐리 추모공연을 하는 걸 보고는 그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사실 제목은 몰랐지만 익숙하게 귀에 속속 꽂혔던 노래들의 상당수가 그의 노래였던 것. 그리고 며칠 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고인이 된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처음 접하게 됐고, 134분간 몰아치는 전율에 몸서리쳤다. 눈물도 찔끔 나왔다. 왜 눈물이 났을까를 생각해보니 남들처럼 그를 다시 볼 수 없는 현실 같은 게 아니었다. 내가 프레디 머큐리를 진정 좋아하게 된 건 사실 이 영화 때문이었으니. 그것보다는 마지막 20여분 간 몰아치는 Live Aid 공연에서 그의 무대가 수많은 관객들을 위로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무대에 선 그는 마치 세상의 주인 같았다. 그만큼 관객들과 소통할 줄 아는 진정한 뮤지션이었던 것. 그 시절 학업에 지친 내 영혼을 위로해줬던 음악감상실이 떠오르는 순간이기도 했었다. 당시 내가 음악감상실이 좋았던 건, 눈을 감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관은 그게 안 되지만 음악감상실은 그게 됐다. 주로 귀로 듣는 거니. 무언가를 늘 강요만 하는 어렵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그곳에서만큼은 조용히 눈을 감고 진정한 나와 마주할 수가 있었던 것. 하지만 그 시절의 음악감상실도 프레디 머큐리와 함께 이젠 내 추억 속의 전설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전설이란 게 그렇더라. 시간이 흐를수록 더 빛이 난다.

2018년 10월 31일 개봉. 러닝타임 134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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