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 지금
어른이 된 지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1.07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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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학교의 텃밭에 밀씨를 뿌렸다. 2011년 개교 이래 해마다 5월이면 하루 좋은 날을 택하여 밀사리를 한다. 2019년 5월의 밀사리에 대비하여 오늘 밀씨를 뿌리고 들어오는 길에 정원의 모과를 따면서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행복감에 빠져든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본관건물 속 교실의 책상 앞에 앉아서 오늘도 어제와 다를 바 없는 그날이 그날인 채 수업에 임하고 있을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지난달 16일에 있었던 본교의 음악회도 같이 떠올려 본다. 그 음악회에서 다음과 같은 인사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오늘 저는 스티브잡스가 2005년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말한 것 중에 점(點)을 잇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대략 간추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노동에 종사하는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 입양이 되었고, 양부모는 생모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그를 대학에 보냈습니다. 그러나 스티브잡스는 양부모가 노동으로 저축한 돈의 대부분이 대학 등록금으로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되고 대학을 입학한 지 6개월 만에 중퇴를 합니다. 그리곤 18개월 동안 청강생으로 그 대학교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이 때 캠퍼스 전체를 장식했던 포스터의 서체에 매료되어 그 글자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배워 보려고 서예과목을 듣게 되었고, 그때 배운 그 서체는 과학이 알아내지 못하는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인 미묘함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공부를 할 당시에는 이런 모든 것이 자신의 삶에서 실제로 응용될 것이란 어떤 희망도 없었지만 10년 후 그가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 때 그 컴퓨터는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고, 우리가 사용하는 윈도우즈 컴퓨터는 이러한 매킨토시를 베껴 쓴 것으로 아마도 그가 그 서체를 공부하지 않았다면 어떤 컴퓨터도 오늘날과 같은 아름다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으며 오직 과거를 돌이켜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 우리 아이들은 그동안 열심히 닦은 실력을 뽐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러한 악기연주와 합창활동 같은 것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어떤 방식으로 연결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저와 우리 선생님들은 우리 아이들이 여러 가지 교육활동을 통해서 배움이 자신의 삶과 연결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여기 모인 우리 아이들의 최초의 또 최고의 선생님인 우리 부모님들도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의 교육의 장을 마련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이들의 실수마저도 그럴 것입니다. 한 곡 한 곡 연주가 끝날 때마다 박수로 격려해 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라고….

부임 후 첫해 밀사리 체험의 날을 떠올려 본다. 필자도 밀사리 체험은 본교에 부임한 후 처음 해 보았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랐지만 직접 해 본 적은 없었고, 개구쟁이인 동네 남자아이들이 남의 집 밀을 잘라서 불에 구워 먹다 주인에게 들켜서 도망쳐 다니는 걸 본 적은 있었다. 그런데 직접 밀사리를 해서 먹어보니 그게 참 고소하고 재미도 있었다. 또 아이들은 서로 그을음에 얼룩진 모습을 보고 웃고 행복해 했다.

이러한 수확의 행복, 밀사리의 즐거움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같이 했던 우리 아이들과 선생님들보다 내가 더 어린아이처럼 행복해 할 수 있었던 건 그와 관련된 경험과 비슷한 추억이 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지난해 밀사리 체험의 날을 이렇게 기억하면서 다시 교실을 바라다본다. 분명 오늘의 교실은 그날이 그날인 교실이 아닐 것이다. 가끔은 자그마한 사고 한 건 때문에 그동안 아이들에게 바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기도 하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 선생님들은 이 아이들이 교실 속에서 맛보는 행복한 수업, 친구들과의 놀이, 직접 하는 현장 체험학습 등 이러한 모든 경험이 점(點)과 점(點)으로 연결되어 그들의 삶이 풍요롭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오늘도 본인이 배우지도 않은 방법으로 가르치는 방법의 전환을 꾀해야 하는 우리 선생님들에게 이 가을 향긋한 모과향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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