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빼빼로데이
추억의 빼빼로데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1.05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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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의 일이다. 지인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서빙을 하는 사람 중에 낯익은 얼굴이 있어서 봤더니 몇 년 전, 다른 학교에서 근무했을 때, 중1 때 담임을 하면서 가르쳤던 학생이었다. 그 아이는 남학생인데도 유달리 글씨를 반듯하고 예쁘게 써서 수업시간에 학습 활동을 할 때 관심을 가지게 된 학생이었다.

교과서 필기를 검사할 때면 서투르고, 아무렇게나 날려서 쓰고, 글씨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삐뚤빼뚤한 글씨들의 집합소에서 그 아이의 반듯하고 정갈한 예쁜 글씨는 내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의 글씨체를 보면, 성격이 드러난다’는 말처럼 반듯하지만 정갈하고, 정성들여 쓴 듯한 글씨에서 한 번씩 장난이 심한 학생들과 어울리던 그 아이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이 다 되어 갈 때쯤 중2병에 가까워져 가던 남자반인 우리 반에서 사고를 치는 학생들 중에 어느덧 그 아이도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왠지 그 아이의 반듯하고 정갈한 글씨처럼 언젠가는 그 아이가 예전처럼 수업시간에 열심히 하면서, 곧잘 시를 써내려가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만 같았다. 그렇게 1년이 다 되었고 마지막 담임시간에 아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때, ‘꿈이라는 곳에 다가서기 위해 공부는 엘리베이터가 될 수 있다’라는 말을 남기며, 그 해의 아이들을 그렇게 2학년으로 올려 보냈다.

남녀공학에서 여자반이 아닌, 남자반 담임을 맡아 다이내믹한 남학생들의 좌충우돌 식 일상들로 그 어느 때보다 힘들었던 한 해였지만, 헤어질 때는 마치 첫 제자를 떠나보낸 새내기 교사처럼 그 해의 제자들은 유달리 마음 한 켠에 새겨졌다.

그렇게 나도 다른 학년을 맡아 복도에서나 가끔씩 1학년 때 가르쳤던 반 아이들을 만나곤 했었다. 시간이 흘러 다음해 아이들은 졸업을 했고 나도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

그런데 몇 년 후에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어 있는 그 아이가 음식점에서 서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 졸업하고 인문계 가지 않았니?”라고 묻자 아이는 인문계 들어갔는데 공부가 안 맞아서 자퇴를 했다고 대답했다. 졸업하고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옮기셨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가려고 했지만 학교를 자퇴해서 부끄러워서 가기가 그랬다는 제자의 말에서 녹록치 않은 삶을 사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학교가 안 맞아서 자퇴를 하고 음식점에서 일하면서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는 제자의 말을 들으니 왠지 서글퍼졌다. 그래도 그 아이라면 엇나가지 않고 제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건 유달리 예뻤던 그 아이의 글씨 때문이었을까?

지인과 한참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제자가 우리 테이블에 다가오더니 뭔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빼빼로’였다. “왠 빼빼로?”라고 묻자 제자는 “선생님, 오늘이 빼빼로데이예요~ 잠깐 나가서 사 가지고 왔어요.” 한다. 한참 공부할 나이에 일하는 제자의 모습도 안쓰러운데, 그 바쁜 와중에 그래도 예전 담임쌤이라고 밖에 나가서 ‘빼빼로’까지 챙겨주는 제자의 모습에서 교사로서 뭔지 모를 뭉클함이 가슴을 적시는 것이었다.

사소하지만 그 사소함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 그것은 교사이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아이들이 쓴 손편지, 직접 만든 카네이션 등등은 아직도 내 보물 중의 하나인 것처럼 교사가 교사로서 아직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는 작은 위안은 아이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아닐까?

영화 ‘킹콩을 들다’에 나오는 대사처럼 “스승은 제자의 영혼에까지 영향을 미쳐 그 깊이를 알지 못한다.” 교사는 그 무게를 짊어져야 하기에 그래서 힘든 정신적 노동자라고 하지 않을까?

오늘 문득 책상 위에 놓인 정성스럽게 포장된 사과를 보는데 그 옛날 빼빼로가 떠오르는 것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예쁜 글씨로 시를 쓰던 그 학생처럼, 아이들은 다 각자의 삶의 몫이 있다는 깨우침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어른들의 잣대로 공부가 중요하다며 주문처럼 되뇌는 말들이 공부보다는 다른 것에 더 관심이 많은 아이들에게 마음의 짐이 되지는 않았을까? 사과데이에 부치지 못한 편지를 쓴다. 수업시간에 더 많은 꿈을 가진 아이들에게 공부의 중요성만을 강조했던 나 자신에게…….

이민선 대송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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