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공원은 나의 영원한 놀이터
울산대공원은 나의 영원한 놀이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1.05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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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추억은 많을수록 좋다. 명절이 되면 울산대공원에 우리 고유의 재기차기, 윷놀이 등 전통놀이기구가 마련된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가 여유롭다. 우린 이런 시간이 되면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의 염원도 생각한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에 눈사람처럼 커지고 싶던 그 마음 내 마음. 아름다운 시절은 꽃잎처럼 흩어져 다시 올 수 없지만 잊을 수는 없어라.” 클린트 홈즈의 팝송 ‘플레이라운드 인 마이 마인드(Playground In My Mind)’을 이용복 가수가 번안해 히트시킨 ‘어린 시절’의 일부다.

울산대공원, 멋있고 자랑스러운 이름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잘 알려진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다. 마치 울산대공원을 두고 지은 시 같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울산대공원. 울산시내 도심에 아주 넓은 면적의 대공원이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시내에 있어 가기 쉽고 안전하며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제공되는 공원이다. 울산대공원에서 진행하는 5월의 장미축제와 겨울의 빛축제는 우리를 더욱 설레게 한다.

아침저녁으로 울산대공원을 산책하면서 어린 시절을 되돌아본다. 오늘도 잘 조성된 느티나무 숲길을 걷는다. 대공원 경계에서 생활한 어린 시절의 활동무대는 바로 울산대공원이었다. 우리 가족에게 울산대공원은 생존의 터전이었으며 영원한 놀이터였다. 논에선 한 해 동안 먹을 양식이 나와야 했다. 봄이면 벼를 심기 위해 온 가족과 이웃동네의 도움이 필요했다. 여름에는 잡초 제거와 병충해 방제를 위한 가족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겨울추위가 오기 전에 추수를 하느라 학교에 등교하는 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겨울이 되면 논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했다. 또한 도시민에게 공급할 채소와 딸기 등을 재배하기 위해 밭 관리에도 정성을 쏟아야 했다.

울산대공원은 울산시 남구에 있는 국내 최대의 도심공원이다. 울산시에서 석유화학공장을 오랫동안 운영해온 SK그룹이 지역에 대한 사회공헌 차원에서 1996년부터 2006년까지 10년에 걸쳐 약 1천억원을 투자해 조성한 후 울산시에 기부채납한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울산대공원이 조성되기 전에는 개발제한지역(그린벨트)으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마을주민들이 생활을 영위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원주민들은 대공원 조성 과정에서 많은 집회와 정부청사 방문으로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계획은 변경되지 않았다.

울산대공원 정문에 들어오면 풍요의 못이 보인다. 과거에는 ‘격동 못’으로 불리었고 1738년에 저수지를 목적으로 조성되었다. 어린 시절 이 저수지는 훌륭한 낚시터였고, 여름이면 수영장으로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변신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나무로 만든 스케이트를 사용했지만 옥동 군부대의 군인가족들의 스케이트 신발과 그것을 타는 모습은 정말 멋져 보였다. 저수지 둑은 청춘남녀들의 데이트 장소로 인기가 높았다. 또한 낚시꾼들이 마시고 두고 간 빈병들은 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좋은 벌이 감이었다. 물론 아침 일찍 일어난 사람의 몫이지만. 현재 호랑이발 테라스 아래 동쪽 방향의 넓은 논에는 마을주민들의 생계가 달려 있었다. 논거랑에는 여천천에서 올라온 미꾸라지들이 많아서 비가 내리면 고기 잡는 재미가 쏠쏠했다.

필자는 현재도 울산대공원을 지켜보며 인근에서 생활하고 있다. 대공원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해왔기에 항상 더 좋은 쉼터를 향한 미래를 그려본다.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는 “건물을 중심으로 도시를 개편하려는 어리석은 행동은 ‘도시는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라고 ‘도시의 승리’에서 강조했다. 핀란드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시벨리우스 공원을 좋아하듯이 울산대공원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창의성을 배양하는 장소로, 어른들에게 여유로운 힐링의 장소로서 두고두고 많은 사랑 받기를 소망한다.

김귀열 NCN 전문위원 / ㈜네오그린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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