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오만과 편견’ 그리고 ‘4차 산업혁명’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1.0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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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달려가자 푸른 들을~’ 70년대 중후반, 정말 많이 듣고 따라 불렀던 노랫말이다. 그 만화영화 영향인지는 몰라도 비슷한 구성을 가진 영화와 드라마가 많이 제작되어 왔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찾아보니 그 원류는 19세기에 출간된 소설 ‘Pride and Prejudice’인 것 같다. 주로 ‘자랑, 자존심(自尊心)’으로 해석되는 영어단어가 ‘건방지고 거만함’을 뜻하는 ‘오만(傲慢)’으로 번역이 되었다. 

책을 읽어보지 않아도 그 제목만큼은 이상하리만치 선명하다. 소설 내용을 살펴보니 ‘오만’이라는 단어는 남자주인공의 면모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렇다면,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 사이’를 뜻하는 ‘편견(偏見)’은 여자주인공의 면모를 의미한다는 말인가? 소설은 이러한 ‘pride’와 ‘prejudice’가 만들어낸 갈등이, 주인공들이 서로의 진면목을 알게 되면서 해소되는 구성을 갖는다. 이를 좀 더 단순화시켜 보자. ‘그릇되게 해석하거나 잘못 알게 된’ 오해(誤解)가 불러온 상황들이,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하고, 말이나 글의 뜻을 깨달아 알게 된’ 이해(理解)의 과정을 거쳐, ‘오해로 생긴 편견들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는’ 요해(了解)의 상태로 변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좀 더 옛날로 돌아가 보자. 18세기 조선의 유명한 학자 연암 박지원의 글에는 ‘몸통은 소와 같고, 꼬리는 나귀와 같으며, 발톱은 범과 같다. 털은 잿빛이며, 귀는 구름장처럼 드리웠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 부분만으로는 무엇을 묘사했는지 알 길이 막막하다. 18세기보다 더 오래전의 이야기는 어떨까? 불경에도 나오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독자들은 단번에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불경에는 한 무리의 장님들이 한 동물을 손으로 만지면서 각기 다르게 묘사하는 대목이 나온다. ‘무같이 생긴 동물’, ‘곡식을 까불 때 사용하는 키’, ‘커다란 절구공이’…. 이쯤 되면 무슨 동물에 대한 묘사인지 단박에 알 수가 있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이 살아있던 시대에는, 개별적 특성에 대한 나열식 설명만으로는 그 동물의 개념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정립된 개념이 머릿속에 자리 잡은 독자들은, 개념이 머릿속에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던 그들의 ‘부분적’ ‘병렬적’이고 ‘배제적’인 나열식 묘사만으로도 그것이 무엇인지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현재로 돌아와 본다. 수년 전부터 각종 미디어에서 흘러나오는 ‘4차 산업혁명(4th Industrial Revolution)’을 살펴보자. 여러 가지 기술들, 예를 들어 인공지능(AI), 3D프린팅(3-dimensional printing) 또는 적층제조(AM: additive manufacturing),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블록체인(block chain)과 같이 대중에게 익숙지 않은 기술들에 대한 숱한 언급이 미디어를 뒤덮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의 ‘병렬적’ 나열만으로는 ‘4차 산업혁명(4次 産業革命)’이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잡히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개별적, 나열적 설명만으로 코끼리를 묘사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이와 같은 개별 기술들의 병렬적 언급보다 그 속에 숨겨진 방향성에 주안점을 두자는 전문가도 있다. 

우리 인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기에 ‘혁명’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용어를 쓰겠는가? 한자어 ‘혁명(革命)’에도, 영어단어 ‘Revolution’에도 ‘도대체 상상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덮칠 기세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다만,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이 체계화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에 그것에 대처해보려는 ‘조급한 마음’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관련된 기술들의 ‘병렬적’ 나열만으로 이해해보려는 모습들이, 코끼리를 통해 우주의 비의를 탐구한 연암의 ‘상기(象記)’와 불경의 ‘열반경’에 나오는 이야기, 조금 더 나아가 ‘Pride and Prejudice’의 주인공을 연상시킨다면, 이는 필자의 기우일까? 

오늘도 ‘치대국 약팽소선(治大國 若烹小鮮=큰 나라의 다스림이 작은 생선요리와 같다)’과 ‘인무원려 필유근우(人無遠慮 必有近憂=사람이 원대한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눈앞의 근심에 휩싸이게 된다)’가 생각나는 하루다.

공영민  울산대학교 첨단소재 교수/산업대학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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