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거리축제 그 뒤끝
가구거리축제 그 뒤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1.04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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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후미의 홍보용 구호에 시선이 꽂힌다, “울산 가구 유통의 중심 학성가구거리가 확 달라졌어요!!”

열흘간(10.25∼11.3)이나 열린 ‘제3회 학성가구거리축제’. 늦가을 햇살이 차갑게 느껴지기 시작한 3일 오후, ‘라자가구’ 옆 골목이 모처럼 시끌벅적하다. 마무리행사의 막이 곧 오르는 탓이다, 그래도 구호하고는 거리가 한참 멀다. ‘확 달라졌다’는 표현이 조금도 가슴에 와 닿지 않은 때문이다.

행사기간 중 학성가구거리를 세 번 찾았다. 애착과 궁금증이 발품을 팔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조용했다. ‘손님 급(急)구함’ ‘블랙 프라이데이’란 빛바랜 글씨가 가구거리의 분위기를 말없이 전해줄 뿐이었다,

마무리 본행사가 가설무대에서 열리기 얼마 전, ‘학성공원 ‘1층’(삼지환)에 전(廛)을 벌렸던 ‘학성 조물딱 점빵’과 ‘어린이 벼룩시장’이 발길 뜸해진 공원에서 철수를 개시했다. 떨이손님이라도 붙들겠다고 내린 용단이었다. 전은 공원 서쪽입구 동상구역 윗목과 주차장 쪽 인도 두 곳에 다시 펼쳐졌다. 손님은 겨우 한줌인데도 행사요원의 기록용 카메라는 분주하게 돌아갔다.

다시 본행사장. ‘아줌마 초청가수’들이 맛보기(식전행사) 무대에서 내려오자 곧바로 중구상인회장의 개회선언과 VIP들의 격려사, 축사가 이어졌다. 주(主)와 객(客)이 뒤바뀐 것일까. ‘학성가구거리상인회’ 대신 학성동 주민자치회 회장 이름이 여러 차례 마이크를 탔다. 100석 남짓한 객석에서도 가구거리 상인들의 모습을 찾기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들만의 잔치’란 말이 잠시 바람결에 스쳐지나갔다.

그래도 잔치 분위기는 조금씩 달아올랐다. 먹을거리 3종 세트 덕분만은 아니었다. 가설무대 단상에 오른 박태완 중구청장이 원고도 없이 격려사를 풀어 나갔다. 격려의 말을 곁들인 ‘학성동 예찬론’이 5분가량 이어졌다.

“학성동은 울산의 행정1번지, 울산의 시작점입니다. 학성동에서 우리 울산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신(神)이 학(鶴)을 타고 내려왔다 해서 신학성산(神鶴城山), 신의 우두머리라 해서 신두산(神頭山)이라고도 합니다. 우리 울산에는 학남동이 있고, 학리가 있고, 동헌 입구의 가학루도 있습니다. ‘학’을 빼면 전통을, ‘학성’을 빼면 울산을 얘기할 수 없습니다.”

학성가구거리 재생에 대한 구상도 밝혔다. “한때는 번영의 상징이었던 가구거리가 30년이 지나면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옛날의 전성기를 재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고객센터와 공동구매장을 만들고 주차장도 넓혀 학성가구거리를 가장 어른답고 위풍당당한 최고의 종갓집으로 만들겠습니다.”

신성봉 중구의회의장과 중구 출신 황세영 시의회의장 역시 원고 없는 축사를 통해 학성동 예찬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VIP 일행은 노래자랑이 한창 진행될 무렵 자리를 옮겼다. ‘무료 DIY 가구 만들기 체험행사장’인 목공방 갤러리로 발길을 돌린 것. 그들은 거기서 열 명 가까운 참가자들을 만나 악수를 나누고는 제각기 발길을 달리했다.

잠시 가구점 몇 군데를 돌며 점주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가구거리축제의 실효성도 알아볼 겸 해서…. 그러나 반응은 대체로 싸늘했고 온기(溫氣) 찾기는 바늘 찾기보다 더 힘들다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행인이 조금은 늘어난 것 같은데 구매하고는 별 상관이 없거든요.” “썰렁한 건 경기 탓이 크겠지만, 도대체 이런 행사 뭣 하러 여는지 모르겠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차마 없앨 수는 없고, 했다는 시늉이나 내면서 눈도장 찍겠다고 그런 것 아닙니까, 솔직히?”

올해로 세 번째 맞이한 학성가구거리축제는 안 한 것보다 못했다는 뒷말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이왕 할 거면 첫날부터 왁자하게 분위기부터 띄워주는 게 옳았다는 볼멘소리도 같이 섞여 나왔다.

김정주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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