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준비
노년의 준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0.31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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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들릴 만큼 평균수명이 늘고 있고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현재의 노인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젊은 시절을 보내고 노령기를 맞았다. 유년기에는 의식주의 기본생활이 매우 어려웠던 시기를 보냈고, 청년기에는 급속한 경제성장시대의 큰 주역이었다. 그러다가 인구증가가 문제되던 시기에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산아제한 국가정책에 맞추어 그들의 부모와는 매우 다른 형태의 핵가족을 이루고 자식에게 헌신적인 삶을 살다가 노인이 되어 그 이전 세대와 다른 긴 시간의 노령기를 보내고 있다.

그들은 또 그들의 부모세대와는 달리 젊은 계층에게 은퇴 후를 의탁할 수도 없고, 노령기를 고려하여 준비하고 있는 젊은 세대와 달리 은퇴 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노령기를 맞게 되었다. 경제적 준비뿐 아니라 많은 여유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내며 관계망을 형성할지에 대한 대비도 없이 그저 열심히 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건강이나 본인의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을 등한시하다 현재 긴 시간의 노령기가 닥치게 되었다. 기술과 사회의 변화는 노인의 젊은 시절 변화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루어져 일반 유선전화를 처음 접한 것을 기억하고 ‘컴퓨터’라는 용어를 처음 들었던 그들이 누구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고 있다. 경제, 기술, 사회, 문화 모든 부분에서 변화의 속도는 빨라지고, 준비하지 못했던 여건의 노령기가 닥친 것이다.

우리 도시의 모습도 비슷하다. 1970년대 이후 산업화로 급격히 성장하던 시기에는 도시의 외연적 확장이 주된 이슈였고, 계속되는 개발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토지를 개발하여 산업용지로 활용하고 주택을 양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정주여건이나 주택의 질을 고려하지 못한 채 빨리 조성할 수 있는 방법으로 건설했다. 또한 당장의 기반시설을 갖추기에 바빠 향후 도시의 성장방향이나 기능연계, 지속가능성보다 현재의 이용만을 고려하여 기반시설을 개발했다.

노령기가 길어질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은퇴 후의 삶을 살게 된 노인처럼 도시도 이와 유사한 길을 걸어 왔다. 즉 노후한 도시기반을 관리, 유지하기 위해 많은 비용이 들 것이라는 것과 사회구성원이 고령화되어 도시 활력의 기반이 달라지고 사회서비스 수요가 변화될 것이라는 것을 심각히 예상하지 못한 채 사회적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은퇴 후 생활을 예상하고 계획하며 대비하기 시작한 베이비부머 이후 세대처럼 우리 도시도 향후 계속되는 도시기반의 노후화와 저성장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도시기능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단순한 토지개발을 통한 외연적 확산보다 기능의 집중과 활용을 극대화하는 거점의 확충과 접근성 향상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조성된 기반시설과 건축물을 활용하여 이용수명을 늘리고 지속적으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정비해야 한다. 아울러 기능 집적과 융복합화를 통한 효율성 향상과 집적된 기능간의 네트워크 및 접근성 향상으로 이용률을 높여 효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지속적인 인구계층의 확보를 위해 꾸준히 도시환경의 질적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육아, 교육, 문화, 복지, 여가, 환경, 상업편의, 기술개발, 창업 등 다양한 분야의 질적 확보를 통해 지속가능한 인구계층의 확보가 요구된다. 또한 도시 내 인구구성 중 노인 비중이 커짐에 따른 세밀한 도시서비스의 조정이 필요하고, 도시의 물리적 여건뿐 아니라 사회구성원의 역할과 네트워크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부터 노인계층에 들어가는 세대는 단순한 돌봄의 대상이 아닌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사회망 기반과 이를 위한 공간적 배려가 필요하다. 노인계층이 긴 노년기를 갑자기 맞이한 세대가 아닌 준비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하듯 도시건조환경 또한 지속가능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한 때이다.

이주영 울산발전연구원 연구위원/ 도시계획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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