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神)에게 다가서다-‘퍼스트맨’
그분(神)에게 다가서다-‘퍼스트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0.25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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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퍼스트 맨' 한 장면.
영화 '퍼스트 맨' 한 장면.

 

이곳 지구에서의 삶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분(神), 그러니까 조물주에 대한 아쉬움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너무 익숙해서 하찮게 여길지 모르지만 우리 개개인의 삶은 전우주적인 관점에서는 대단히 특별하다. 생명이니까. 지금 옆에 사람, 즉 생명체가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하지 마시길. 우리가 속한 태양계만 해도 9개의 행성 중에 지구를 제외하고는 그 광활한 땅덩어리에 생명체 하나 없다. 지구에서 그토록 천대를 받고 있는 바퀴벌레라도 만약 화성에서 발견되면 그 놈은 스타가 된다. 태양계 밖은 1977년 쏘아 올린 보이저 1호가 이제 막 명왕성을 벗어났다고 하니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생명체 발견은 그리 쉽지 않을 거 같다.

거기다 우리를 둘러싼 대자연은 너무도 아름답고, 늘 풍족한 먹을거리를 제공한다.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란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먹던 토마토를 밭에 버려도 이곳에서는 싹이 튼다. 마치 대지의 정령이 부리는 마술 같다. 하지만 대기권만 벗어나도 숨 쉴 공기는 없고, 영하 273의 추위와 죽음의 자외선과 방사선이 기다리고 있다. 뭐. 이쯤 되면 이 우주에서 이곳 지구는 가히 ‘천국’이라 불러도 별 무리가 없지 않을까.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훌륭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지구는 분명 우주 통틀어 최고의 걸작(Masterpiece)이다.

그런데 말이야. 이왕 만들 거면 진짜 천국으로 만드시지 그분은 왜 천국 흉내만 내셨을까. 그러니까 고통이나 슬픔까지 왜 주셨냐는 거다. 누구든 한 번 쯤은 그분께 이 질문을 던져보지 않았을까. 그건 <퍼스트맨>에서 주인공 닐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1969년 7월 미국 나사(NASA: 미항공우주국)의 아폴로 11호가 달에 갔다 온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조작됐다는 음모론까지 제법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이지만 <퍼스트맨>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런 진위 여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 영화로 인해 세간에선 아폴로 11호가 달에 진짜 갔다 왔는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면서 다들 달을 쳐다보는 분위기지만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정작 달이 아니라 인간 닐 암스트롱을 보라고 말한다. 특히 닐이 그토록 달에 가고자 했던 이유가 중요한데 그건 바로 상처나 상실에 따른 고통과 슬픔 때문이었다.

닐은 소아암에 걸린 어린 딸이 세상을 뜨자 NASA의 달 탐험 우주프로젝트에 지원하게 된다. 딸을 잃은 상실감과 슬픔 속에서 그는 자주 달을 쳐다봤는데 내겐 그 모습이 이곳에 존재하는 고통과 슬픔에 대한 도피로 보였다. 그건 곧 그토록 예쁜 딸을 그분은 왜 그렇게 일찍 ‘다른 세계’로 데려 갔을까라는 닐의 질문이기도 했다. 다른 세계. 그랬다. 닐이 달에 가려 했던 건 다른 세계로 가고 싶었던 거였다. 바로 달나라였고, 자신의 예쁜 딸이 살고 있는 다른 세계였던 거다. 실제로 달에 도착한 뒤 닐은 살아 있을 때 딸과 행복하게 보냈던 시간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지구에서 가져 온 딸의 팔찌를 달 분화구 속으로 던진다. 다른 세계이니 혹시 딸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닐은 달로 출발하기 전, 친한 세 명의 동료까지 불의의 사고로 잃고 만다. 그로 인해 그의 상실감은 더 깊어지고, 달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반대로 이곳 지구에서의 삶에 대한 회의감은 극에 달한다. 상처받아 고통스러울 땐 누구든 지금 있는 곳을 떠나고 싶어 하기 마련. 그 때부터 그의 얼굴엔 웃음기도 사라진다. 마치 그분에게 따지듯이.

물론 따진다고 그분이 대답해줄 리는 없다. 여태까지 그래왔으니.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건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이나 슬픔이 있어야 이야기는 더 재밌어 진다는 것. 또 더 감동적이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드라마 각본이나 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 고통이나 슬픔을 집어넣듯이 그분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말. 하긴. 이 우주에 그런 거라도 없으면 그분도 얼마나 지루하실까. 우리가 그렇듯 그 분 역시 더 재밌고 감동적인 스토리를 구상하는 재미로 살고 계신 건 아닐까. 혹시 또 모르지. 지구라는 우주 최고의 걸작을 선물 받은 우리에게 “그럼 다 공짜겠어?”라며 오히려 섭섭해 하고 계실지도. 그리고 그런 아늑한 지구를 두고 자꾸만 죽음의 공간인 우주로 기어 나오려는 우리 인간들의 도전에 대해서는 자식 새끼 잘못 키웠다고 투덜댈 지도 모를 일이다. 1969년 7월 20일 닐 암스트롱은 달에 첫 발을 내딛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건 한 사람의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겐 커다란 도약이다.” 그분도 분명히 보고 들었을 테고, 지금도 행복과 고통, 기쁨과 슬픔으로 멋진 우주대서사시를 쓰고 계신 그 분은 그때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애쓴다. 잘해봐라.”

2018년 10월 18일. 러닝타임 141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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