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 편지]식물원 가는 길
[길위의 편지]식물원 가는 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0.22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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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경쾌한 스윙이 차창 밖 가을빛에 산란한다. 짙게 가라앉은 첼로를 잠시 접어 넣고 시냇물 소리를 닮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를 걸었다. 일렁이는 마음을 세울 때, 빨라지는 속도를 줄일 때, 답을 내지 못하는 물음을 받았을 때, 내게 그의 평균율은 귀로 듣는 성서다. 게다가 존 루이스의 재즈 연주라니, 오늘은 따분한 성서에 춤을 얹었다.

눈을 뜨고 잠에서 깨니 벌써 햇살이 가슴께에 밀려와 있다. 다시 눈을 감고 잠시, 오늘은 할일이 뭐지? 세상에나 아주 이토록 오랜만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아침이라니, 온전히 나의 모든 오감을 열어 숨 쉬게 해 줄 테야. 다시 눈을 떴다.

한가롭던 시간에는 늘 미루어 오다가 빈틈없는 시간이 오면 청개구리 엄마 그립듯 가고플까. 포항 기청산 식물원을 만나러 가는 길은 초행이지만 마치 몇 번을 간 듯하다. 그도 그런 것이 잘 아는 지인분이 오랫동안 그곳에 몸을 담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얼마 전 소개된 TV 다큐 프로그램을 보고 마음을 먼저 보냈던 이유다.

뭉턱 뭉턱 두텁게 머무른 구름 사이로 푸른빛이 보이는데 빗방울이 앞 유리를 긋는다. 빠르고 불온하게 변화하는 요즘 기후에 차츰 적응한지라 나들이길 비도 이젠 꽤 익숙한 동행자다.

지난 계절의 화양연화의 시간을 갈무리해 놓은 듯 울퉁불퉁 자목련의 열매가 크고 붉다. 그 아래로 여러 구절초의 얼굴이 화사하다. 인위적이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간직한 식물원으로 만들어온 원장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긴 꽃들의 다정하고 환한 낯빛이라니.

이 식물원은 나와 살아온 생의 길이가 비슷하다. 일흔 중반을 훌쩍 넘기신 원장의 이십대 시절, 도서관 앞에 심겨져 있었던 나무를 좋아했는데 그 씨앗을 고향땅에 심으면서 숲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반백년, 지금 내 키의 열배쯤 자란 거목이 되었다. 비처럼 낙엽이 떨어져 '낙우송'이란 이름을 가진 나무, 고개를 한참 들어 잎을 보고 있자니 연둣빛 물감이 내게 왈칵 쏟아진다. 나무 주위로 종유석처럼 여기저기 솟아난 뿌리는 이제까지 보지 못한 신비한 모습인데, 숨을 쉬기 위해 땅 위로 솟아난 호흡근이라고 한다. 말을 보태 표현하기가 힘든 경이로운 모습이다.

눈으로 보는 조경, 향기로 맡는 조경, 여러 형태의 작은 정원엔 수만 그루의 나무와 꽃이 있지만 이곳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그 조경 중 최고라는 '귀조경'이라는 데 있다. 귀조경은 말 그대로 새들이 모여들어 살 수 있도록 만든 정원을 말한다. 텃새와 철새가 어우러져 수십 종 새들의 선율이 식물원을 나설 때까지 귓가에서 연주된다. 지휘자와 악보가 없는 자연의 평균율은 불협화음에 지친 사람의 귀를 치유한다. 낮은 소리, 높은 목청, 짧은 울음, 긴 웃음, 눈을 감고 벤치에 잠시 앉았다. 내 안의 검은 숨을 후후, 핏줄기를 타고 도는 새소리들, 나도 잠시 새가 된다.

가을 꽃 몇 종을 남기고 지난 계절 꽃으로 화려한 시절을 보낸 수만 종의 야생화는 지금 작고 여린 잎으로 땅에 바싹 엎드려 있다. 돌아가야 할 곳으로 몸을 기울인 모습은 애잔하지만 경건하며 질서가 있다. 여러 테마로 정리된 수십 군데의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오솔길 아래로 층층이 쌓인 잎들, 오래되어 검은 것들은 맨 아래 알토의 묵직함으로 받치고 갓 떨어져 사뿐히 앉은 잎은 소프라노로 사각거린다.

“이 나무 이파리 접어서 향기 좀 맡아봐” 투박하고 정감 있게 생긴 엄마손 모양의 이파리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흠흠. 이게 무슨 향이지 사과 같기도 하고 복숭아 샴페인 같기도 하고.” “풍향수라는 나무야, 수만 년 전부터 이곳에서 살아왔던 바람의 향기를 담은 나무.” 외투 주머니에 몇 잎을 쏘옥 넣고 꼼지락거렸다. 손가락 사이로 휘휘 바람이 인다.

유난히 길고 긴 터널이 많았던 고속도로에서 내려와 집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처음부터 이곳은 비가 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둥글고 평온한 가을 오후의 빛이 아직 남았고, 평균율의 마지막 14번째 트랙의 연주도 남았다. 시동을 켠 채 잠시 앉았다. 어디서 들리는 새소리일까, 가을의 찬란한 울음이 깊어 간다.

최영실 여행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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