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와 ‘비리’ 사이
‘로비’와 ‘비리’ 사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0.21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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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로비’(lobby)라 하면 부정적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미국과는 달리 법적 보호를 못 받는 탓도 있으려니와 ‘부정’ ‘불법’과 동의어쯤으로 여기는 선입견이 지배적인 탓이다. 이 용어는 지난 20일 KBS <엄경철의 심야토론>에서도 몇 차례 전파를 탔다.

심야토론의 주제는 <사립유치원 파문…개혁 방안은?>이었고, ‘로비’란 말은 패널의 한 사람이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인 기동민 의원(민주당,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먼저 꺼냈다. 그는 로비의 주체로 ‘한유총’(=사)한국유치원총연합회)을, 로비의 객체로 교육당국(교육부, 교육청)과 국회를 지목하면서 자신도 반성하는 징표로 머리를 숙였다.

흥미로운 사실이 안테나에 걸렸다. 사립유치원 문제를 다루는 자리에 정원이 16명인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위원이 한 명도 나타나지 않은 사실이다. ‘로비의 객체’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어서 KBS 측이 일부러 배제했거나 소속 위원 스스로가 거절했을지 모른다는 추측을 낳았다. 토론회에는 이덕선 한유총 비대위원장(하나복지재단 이사장)과 이학춘 동아대 국제법무학과 교수(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 연구논문 저자), 김명신 서울시교육청 감사자문위원(전 서울시의원)도 패널로 참여했다.

기 의원은 물론 사립유치원 운영자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분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한유총의 로비 능력은 ‘타의 추종도 불허할 만큼’ 막강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국 사립유치원(4천282곳)의 74.1%(3천173곳)가 이 단체에 가입돼 있다 보니 선거 때마다 영향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사립유치원들이 수십 년째 교육당국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다 한유총 특유의 막강한 로비 덕분이란 얘기다. 그래서인지 혹자는 교육당국과 사립유치원의 ‘유착관계’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그런 인식의 바탕에는 ‘로비와 비리는 함수관계’라는 선입견이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거나 이날 심야토론에는 댓글(문자의견)들이 숱하게 올라왔다. 다음은 그 중 일부. 사립유치원 비난 글이 양적으로 우세했다. “유치원 원장님들, 교육자인 줄 알았더니 자영업자였군요!” “아쉬울 땐 자영업자였다가 자존심은 교육자시군요.”(이는 ‘사립유치원 운영자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에 동시에 속해 있다’는 이덕선 위원장과 이학춘 교수의 지론을 빗대어 한 말이다.) “유치원 장사꾼 이제 그만!” “앞에서는 반성하는 척, 뒤에서는 반성 없는 자세!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존경받고 싶으면 투명하게 해 주세요.” “아이들 볼모로 휴업하는 유치원은 절대 지원금 주지 마세요.” “정말 반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 화가 납니다.” “감사 안 받고 수익사업 하고 싶으면 국가지원금 아예 안 받으면 되겠네요.”

‘성인용품’이나 ‘루이비통’을 부각시킨 일부 언론의 선정적 보도, 사립유치원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의 글, 사립유치원을 감싸는 글도 간간이 올라왔다. “언론도 책임 있습니다. 자극적인 단어 사용으로 학부모 불안감만 조장하고….” “유치원은 교육 사업입니다. 마녀사냥 하지 맙시다.” “우리 유치원 원장님은 정말 좋아요. 좋은 방향으로 결정되면 좋겠어요.”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았다. “공적 자금이든 사적 자금이든 성인용품 구매는 아닌 듯.” 대안을 담은 글, 어린이집을 겨냥한 글도 가세했다. “사립유치원 없애고 국공립으로 100% 전환이 답이다.” “유치원만 아니라 어린이집도 감사 대상이 되어야 한다.”

결말이 어떻게 날지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다만 지금 이 시점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거창한 로비가 아니라 ‘한유총’이 대변하는 사립유치원업계의 자기반성과 자정노력이 아닐까? 한유총이 ‘유아교육 발전에 공헌하며 유치원의 건전한 육성과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된 사단법인’이기에 하는 조언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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