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제’로 착각한 ‘눌재로’
‘눌제’로 착각한 ‘눌재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0.21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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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제(訥齊)’와 ‘눌재’는 발음이 비슷하지만 그 의미는 사뭇 다르다. ‘눌제’로 착각한 ‘눌재로’ 이야기다.

눌제는 현풍 사람 곽전(郭?·1839∼1911)의 호(號)다. 눌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여 년 전이다. 통도사 사찰학춤과 양산학춤의 4대 전승가계이자 전승자인 필자는 한국학춤문화를 연구하던 중에 울산에 정착하게 됐다. ‘학을 띤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어가며 학과 학춤에 집착했다. 대곡리 집청전 앞 대곡천 반구암에 운암(雲岩) 최신기(崔信基·1673∼1737)가 새긴 학 그림도 그중 하나다. 화학암(畵鶴巖)의 시(詩)가 현풍사람 곽전의 작품이며 그의 호(號)가 눌제라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눌재로는 삼호 산 아래 동서로 통하는 삼호로에서 태화강 쪽 남산로로 난 내리막길의 이름이다. 오른편에는 와와공원, 왼편에는 옥현초등학교 정문이 있는 왕복 2차선 도로가 눌재로다. 삼호산 아래 ‘눌재 삼거리’에서 태화강 쪽 ‘옥현초등학교 앞 교차로’까지의 내리막길 약 300m 거리이다. 지금처럼 사람이 다니는 인도(人道)가 잘 닦여 있지 않은 시절에는 언덕을 넘어 다니기 일쑤였다.

언덕을 고개라고도 한다. 고개는 인생사의 숱한 사연을 간직한 장소다. 특히 아리랑고개, 미아리고개, 성황당고개 등은 많은 사연을 담고 있다. 고개는 그 높낮이에 따라 령(嶺)·현(峴)·치(峙)·티 등으로 부른다. 강원도의 대관령(大關嶺), 부산의 문현동, 중구 옥교동의 새치, 언양 석남사 부근의 살티 등이 좋은 본보기다. 대구 고모령의 역은 현재 폐쇄되었지만, 현인 선생의 <비 내리는 고모령>은 갖가지 기억을 되살려줄 것이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 오던 그날 밤이 그리웁고나.” 이 노래는 70∼80대의 향수를 달래주기에 충분하다.

령(嶺)은 순우리말 ‘재’로도 부른다. 충청북도의 박달재, 경북의 문경새재,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만리재가 그렇고, 울산에는 미연의 고무재와 등억의 간월재가 있다. 그리고 현(峴)은 고개를 말한다. 큰 고개인 대현(大峴)과 그보다 작은 고개인 아현(亞峴)으로 구분된다. 부산의 문현동, 서울 마포구의 아현동이 그런 사례다.

울산의 현(峴)에는 문수로의 옥현(玉峴), 문죽리의 두현(斗峴), 청량읍 율리의 율현(栗峴), 검단 웅촌면의 덕현(德峴)이 있다. 덕현에서 울주군 삼동면 출강리(出崗里)로 가자면 삼동면 작동리 산현(山峴)을 넘어가야 한다. 송현(松峴)은 ‘솔고개’로, 현재 범서읍사무소에서 언양 방면으로 나 있는 언덕배기를 말한다. 계변고개, 지잔고개처럼 한자인 현(峴)을 구태여 사용하지 않는 고개 이름도 있다.

그런가 하면 한자 지명을 우리말로 풀어서 쓰는 경우도 있다. 울산에서 석천(石川)을 돌내, 활천(活川)을 살내, 광천(廣川)을 늠내, 계변현(戒邊峴)을 ‘개비고개’, 월천(月川)을 ‘달내’, 달령(達嶺)을 ‘달골재’로 풀어쓰는 경우가 그런 사례다. 이런 때 처음의 한자식 표기를 분명하게 알고 있지 못하면 본의 아니게 아전인수(我田引水), 견강부회(牽强附會)라는 오해를 사서 질정(叱正)의 대상이 될 수도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

“눌재로-0.3Km의 보조간선도로로 구간은 <남산로(옥현초교 앞)↔삼호로(다운교회)>이다. 이 도로는 인접한 [삼호산]의 골짜기 이름을 반영하여 이 명칭을 부여했다….”『울산 남구지명사』(울산남구문화원,2009) 삼호동의 보조간선도로를 설명한 글이다.

이러한 사실을 미처 살펴보지질 못했다. 필자는 반구대의 화학암을 소개하면서 “학을 새긴 바위를 조선 말기 학자 포산(苞山:현재 현풍) 사람 눌제(訥齊) 곽전(1839년∼1911)은 시(詩)를 통해 화학암(畵鶴巖)이라 불렀다(울산 삼호동의 ‘눌재삼거리’와 ‘눌재로’는 곽전의 호를 딴 도로 이름이다).”(울산신문.2018.5.30. 학(鶴)은 학성(鶴城)의 새이며, 시어(詩語)의 대표적 주인공이다)라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데 필자는 남구 지명사를 통해 ‘눌재로’의 이름이 인접한 삼호산 골짜기의 이름을 반영해서 지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눌재는 ‘누운 재’의 준말이며, 그 어원이 한자어 와현(臥峴)에서 비롯되었음을 안 것이다. 와현은 인접한 ‘와와(臥瓦)’란 지명의 영향을 받았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필자는 추향대제(秋享大祭)에서 울산학춤을 헌무(獻舞)하기 위해 지난 15일 울산 충의사(忠義祠)를 참배했다. 그날 박채은(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선생을 만나 정확한 지적을 받았다. 지명은 처음에 의미가 함축된 한자어로 생성되거나 음을 빌려 한자로 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대를 거치면서 발음이 와전(訛傳)되어 현재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계변(戒邊)’을 해변(海邊)인 ‘갯가’로 착각하는 경우처럼 현상만 쫓다보면 본질과 십만팔천리 어긋나는 경우도 생긴다. ‘눌제’를 ‘눌재’로 착각한 경우처럼 지명을 풀이할 때 정신 줄을 놓아서는 안 되겠다. 이번 기회에 잘못을 바로잡게 되어 무척 기쁘고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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