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사랑-‘스타 이즈 본’
그 남자의 사랑-‘스타 이즈 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0.18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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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톱스타였다. 그는 가수였다. 반면 여자는 천상의 목소리를 지녔지만 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무명 가수였다. 공연을 마친 어느 날 남자는 우연히 여자가 있는 바에 술을 마시러 갔다가 그녀의 노래를 듣게 된다. 이미 다 가진 남자에게 삶은 허망함 그 자체였을 터. 여자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멋진 무대에 남자는 잠시 흥미를 갖게 됐다. 그랬다. 그 남자, 그 여자에게 반했다. 그게 남자에게 중요했던 건, 술과 마약에 젖어 방향을 잃은 채 물에 둥둥 떠다니듯 살고 있었기에 그 끌림은 그에게 목적지와 방향을 제시했다.

여자는 한 눈에 알아봤다. 커다란 성공 뒤에 가려진 남자의 깊은 슬픔을. 싱어 송 라이터였던 여자는 남자의 어린 시절 아픈 기억들을 즉석에서 만든 노래로 보듬어주게 됐고, <비포 선라이즈>에서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이 처음 만난 뒤 함께 보냈던 그 밤처럼 둘은 밤새 음악 이야기를 하며 서로를 조금씩 알아갔다. 남자의 이름은 잭슨(브래들리 쿠퍼)이었고, 여자는 엘리(레이디 가가)였다.

마침내 남자는 결심한다. 여자에게 기회를 주기로. 자신의 콘서트에 여자를 초대한 남자는 수많은 자신의 팬들 앞에 그녀를 무대에 세운다. 사랑이란 게 그렇다.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어진다. 또 마주보며 사랑을 속삭이는 것도 좋지만 진정 사랑한다면 그나 그녀에게 기회를 주는 게 아닐까. <어린 왕자>를 쓴 생텍쥐페리도 그랬다지. 사랑은 마주보는 게 아니라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하지만 남자의 사랑은 크기가 생각보다 훨씬 컸다. 또 깊었다.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 가수로 여자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자 남자가 말한다. “당신 속을 까발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될 수 없어. 진심을 노래하지 않으면 끝이야. 그러니 겁내지 마. 당신 이야기를 언제 들어줄까 겁내지 말고, 가서 진정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

술과 마약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자는 점점 망가져가고 있었지만 인기에 연연해 팬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음악을 하기보다는 자신만의 노래를 하라고 조언했던 것. 하지만 여자는 한동안 오해를 했다. 더욱 유명해져가는 자신을 남자가 질투하는 거라고.

허나 여자의 사랑도 깊긴 마찬가지. 커져 가는 자신의 유명세에 반비례해 점점 망가져만 가는 남자에게 못내 미안해 혹시 자신을 만나고부터 그렇게 된 건 아닌지 안타까워하며 슬퍼한다. 하지만 사랑에 후회라는 단어는 애초에 낄 자리가 없다. 그 어떤 사랑이든 진심을 담은 사랑은 평생 잊지 못할 전설이 되니까. 그들의 사랑은 각자에게 이미 전설이 되고도 남았다.

그래도 술과 마약에 찌든 남자의 사랑을 여자가 여전히 소중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태곳적 그의 상처에 깊이 교감하고 있었기 때문.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처럼 그들의 사랑도 철저히 부서져가고 있었지만 여자는 결코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는 그게 너무 미안했다. 대형 사고를 친 남자는 결국 여자를 위해 사라져 줄 준비를 하게 된다. 그 때도 여자는 남자를 원망하지 않았지만 남자는 점점 짐이 되어가는 자신을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점점 부서져가는 사랑 앞에서 이제 여자가 남자에게 바라는 유일한 건 처음 같이 했던 무대에서처럼 다시 함께 노래하는 것. 처음부터 그랬다. 여자는 늘 더 큰 성공보다 남자의 더 큰 사랑을 원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슬프게 흔들렸고, 그것은 이미 비극을 예고하고 있었다. 허나 비극은 사랑이 빠진, 슬픔이 닥쳤을 때 쓰는 말. 마침내 별(star)이 된 그의 사랑은 더 높고 넓은 곳에서 그녀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여자가 스타가 된 게 아니었다. 그 남자의 사랑이 별이 되었다.

2018년 10월 9일 개봉. 러닝타임 135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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