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 카사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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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0.16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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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 방망이의 조련사 이승엽 선수는 한때 일본 프로야구에서 맹활약한 적이 있다. 한국인의 긍지를 갖고 일본 땅에서 대단한 국위선양을 했다. 당시 일본매스컴에서 자주 인터뷰를 한 것을 기억한다. “교오노 시아이모 ‘잇쇼켄메이’ 간바리마스!”(오늘 시합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유독 ‘잇쇼켄메이(一生懸命)’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그것은 ‘목숨을 바칠 정도로’ 야구를 열심히 해보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왕년의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사원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 생각난다. 특정 업무를 담당하는 책임자가 일을 해 보지도 않고, 머뭇거리거나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으면 이렇게 다그쳤다. “이봐! (해보기는) 해봤어?”. 그 일에 목숨 걸고 전심전력으로 해보고 그러냐?라는 뜻이다.

왕 회장은 1972년 국내 최초로 그리스 리바노스(Livanos)사의 경영진을 찾아가 유조선 설계도면과 울산 미포만 백사장 부지 사진을 내밀며 선박을 발주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상대방이 머뭇거리자, 주머니에서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보이며 우리 한국이 옛날부터 ‘조선강국’임을 역설했다. ‘목숨을 바칠 정도’의 집념으로 보물 같은 첫 오더를 따낸 ‘성공적인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우리나라에 지하철이 개통된 지 벌써 수십 년이 된다. 얽히고설킨 지하철 라인을 우리는 일상에서 자주 경험한다. 교통관리부서에서는 동시에 승객들을 위한 서비스로 에스컬레이터도 곳곳에 많이 설치하고 있다. 바쁜 일상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뭐니 해도 시간이 돈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바둥바둥 살아간다. 1분이라도 아침잠을 더 자고 싶고 1초라도 빨리 서둘러야 하는 각박한 세상에 살면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에스컬레이터는, 몇 년 전 개통된 대구지하철 2호선과 모노레일 도시철도 3호선의 환승역인 신남역에 있다. 52m나 되는 국내 최장이라니 입이 쩍 벌어진다. 다음으로는 서울에 있는 당산역. 9호선 당산역 대합실에서 2호선 당산역 승강장까지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는 총 6대로 길이 48m의 초대형이다. 일반건물 8층 높이로 수송능력은 시간당 5만4천 명이라 한다. 그러니 자주 일어나는 안전사고 때문에 담당책임자가 ‘위험경고문’을 아예 벽타일에다 새겨놓았다.

경고문이 기가 막힌다. ‘지금 들어오는 저 열차!! 여기서 뛰어도 못 탑니다. 제가 해봤어요!’독창적인 우리말 표현의 멋진 승리다. 효과는 100프로였다.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무엇이든 모두 시도해봤다’는 함의를 갖고 있다.

법학박사 학위까지 딴 이태리 사람 카사노바는 희대의 바람둥이로 불려진다. 그런데 뭔가 좀 다른 면의 평가가 있다. 문학, 철학, 윤리학, 화학, 수학, 의학 등을 두루 공부한 만능 재주꾼이라는 사실이다. 저서도 40여 권에 달한다니 놀랍다 [카사노바 나의 편력, 김석희 역]. 매일 영양의 보고인 굴을 60개씩 꼭 챙겨먹었던 그는, 옹녀의 연인 ‘변강쇠’와는 전혀 달랐다. 베니스에서 태어난 그는, 감각의 노예였고 여자를 사랑했지만 여자보다 자유를 더 사랑한 ‘자유인’이었다.

무엇보다 여성을 연구하고 여성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었다고 하니 범인(凡人)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만 ‘철학자로 살다가 기독교인으로 떠난다’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해볼 것은 다 해본’ 최고의 여성연구자라고 하면 올바른 판단일까.

무슨 분야든 ‘잇쇼켄메이(一生懸命)’의 정신이라면 성공이다. 다시 말해서 목적을 위하여 전방위로 ‘집념’하는 상태야말로 개인이 아니라 공적인 행복을 위해서라도 유효할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삶의 시기가 어디든, 내가 좋아하는 것,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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