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왜성과 ‘동백소녀’
울산왜성과 ‘동백소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0.1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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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입도(觀光立都)’를 꿈꾸는 지자체라면 군침을 삼킬만한 게 있다. ‘이야기가 있는’ 캐릭터·조형물이다. 그런 류의 캐릭터라면 세계적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일본 구마모토 현의 ‘구마몬(くまモン)’을 빼놓을 수 없다. 이 ‘빨간 볼이 귀여운 검은 곰’은 큐슈 신칸센의 완전개통에 때맞춰 현(縣)이 개발한 관광 캐릭터다. 개발 4년 후(2015년)부터 들어오는 연간 수입이 1조원을 웃돈다니 가히 ‘관광대박’인 셈이다.

울산에도 이를 흉내 냈겠다 싶은 관광 캐릭터가 있다. 종갓집 중구가 공들여 만든 ‘울산큰애기’다. 자초지종을 모르는 사람은 속아 넘어가기 십상인 것이 문화의 거리에 있는 ‘울산큰애기 하우스’(2017년 8월 25일 개소)의 설명문이다. ‘울산누리’ 기자가 4월 20일, 있는 그대로를 글로 올렸다. “1960년대 대중가요로 즐겨 불렀던 가수 김상희의 <울산 큰애기>는 전국 어느 지역보다 인물 좋고 마음씨 좋은 반구동 처녀들을 노래한 것이다.>

과장은 좀 더 이어진다(문장은 맞춤법에 맞게 조금 다듬었다.) “160cm 중반의 키에 단발머리 아가씨다. 주근깨 얼굴은 복스러운 어머니를 닮았으나 체형은 요새 젊은 층과 같다. 배춧국을 좋아하고 머리핀과 A형 원피스를 즐겨 입는다. 얼굴의 주근깨가 유일한 단점으로, 항상 블러셔(blusher) 화장을 한다. … 취미는 관광객과 사진 찍기, 그리고 태화강에서 자전거 타기이다.”

사실 ‘스토리텔링’이란 게 으레 그렇듯 ‘인물 좋고 마음씨 좋은 반구동 처녀’는 김상희의 노랫말 이미지에 그럴싸하게 이야기를 입힌 ‘억지화장’ 비슷한 것이다. 하지만 외지 손님이나 영문 모르는 시민들은 울산큰애기가 정말 그런 줄 알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쯤 되면 이야기를 입힌 캐릭터의 위력은 실감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번 글에 ‘울산큰애기’를 애써 불러올린 이유가 있다. 며칠 전 사설에서 ‘전국 인기 3위’를 차지한 울산큰애기 얘기를 끄집어내다가 번지수를 잘못 짚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상(受賞)에 대한 찬사까지는 좋았으나 중구 학성공원(울산왜성) 맨 꼭대기 화단의 소녀상(얼굴 조형물)을 울산큰애기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 방’을 직감한 것은 중구청 담당자의 전화를 받고 난 직후의 일이다. 그가 친절하게 말했다. “그 조형물은 울산큰애기가 아니고 중구문화원에서 울산동백을 의원화해서 만든 소녀상입니다.”

미안하다고 했지만 뒷맛이 영 찝찝했다. 지난 토요일 오후, 학성공원을 일부러 찾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알록달록하게 치장한 ‘울산동백과 소녀’란 안내판이 시야에 잡혔다. “울산학성이 원산지인 울산동백을 임진왜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일본으로 가져간 이후, 400여년 만인 1992년에 다시 울산으로 돌아온 것을 의인화하여 표현한 작품”이란 설명과 ‘울산광역시 중구청’이란 글자가 또렷했다.

잠시 의문이 일었다. 어쩌자고 ‘동백소녀’를 ‘울산큰애기’로 잘못 보았을까? 의문은 다시 꼬리를 물었다. ‘울산동백’이라면 ‘오색팔중산춘(五色八重散椿)’을 가리키고, 이 희귀식물의 원산지가 학성공원이란 설(說)에는 거부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지 않은가? 심지어는 ‘사기’라고 몰아치기까지…. 어쨌거나 중구청은 울산동백 열세 그루를 주민 세금으로 일본서 사들여와 구청 화단과 학성공원에 나눠 심었다. 그런데 지금 중구청에 지금 남아있는 것은 한 그루뿐이다. 학성공원의 여섯 그루도 도난방지용 삼각(三角)철장에 갇혀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다. 4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팔자가 사나운 탓이겠거니….

중구청이 차제에 멀리 내다보는 마음으로 공원 꾸미기 작전을 바꿨으면 좋겠다. 울산왜성에 도통 어울려 보이지 않는 ‘동백소녀’를 설치한 것도 모자라 ‘동백공원’으로 꾸민답시고 공원 전체를 국산 동백으로 뒤덮어 가는 안목이 하도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다.

김정주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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