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짬뽕이야-‘베놈’
인간은 짬뽕이야-‘베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0.11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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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 등장하는 슈퍼히어로들이 비현실적인 건 그들이 지닌 초능력이나 파워 탓도 있지만 인성도 한 몫을 한다. 그러니까 슈퍼히어로들 대부분이 지나치게 착하다. 솔직히 똥도 안 쌀 것 같다. 그 동안 <핸콕>이나 <왓치맨> 등의 작품에서 망가진 슈퍼히어로들이 몇몇 등장하긴 했지만 슈펴히어로들 대부분은 여전히 천사표다. 선(善)이다.

하지만 슈퍼히어로가 현실에서 존재한다면 그들의 실제 모습은 그렇지 않을 거 같다. 똥도 싸고, 가끔 침도 뱉고 무단횡단도 하고, 욕도 할 거다. 여자도 밝히고 섹스도 할 거다. 그러다 누군가가 위험에 처하거나 악당을 보면 나서서 처리하겠지. 아니, 그보다 슈퍼히어로들도 악한 마음을 가끔 품을 것 같다. 산다는 게 워낙 지랄 맞은 일이다 보니 제아무리 슈퍼히어로라 해도 짜증나는 일이나 화나는 일이 생기지 않을 수는 없을 터. 또 착한 슈퍼히어로들이 돈을 탐하지는 않을 테고,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다 보면 더러운 꼴도 많이 당할 게 분명하다. 그러다 보면 보통의 우리 인간들처럼 가끔 괴물이 될 지도 모른다.

‘슈퍼히어로(Super Hero)’라는 단어에 많이 익숙해져 그렇지 사실 히어로 장르에는 ‘빌런히어로(Villain Hero)’도 존재한다. 악당히어로라는 뜻이다. 악당이 어떻게 영웅이 될 수 있을까 싶겠지만 원래 삶이란 게 그런 모순들로 가득 차 있다. 다시 말해 창조(영웅)와 파괴(악당)가 늘 반복된다. 잘 다니던 직장에서 갑자기 해고를 당하기도 하고, 미치도록 사랑했던 그나 그녀인데 갑자기 헤어지기도 한다. 어제까지 잘 나가던 대기업 직원이었던 내가, 어제까지 그토록 사랑했던 내가 오늘은 낯설기만 하다. 그렇게 삶은 늘 뜬금없고, 잔인하다. 그 속에서 사람의 인성이라는 것도 마찬가지. 늘 선과 악을 오갈 수밖에 없다. 슈퍼히어로보다 빌런히어로가 더 현실감 있게 와 닿는 이유가 아닐까. 서론이 길었지만 사실 이런 생각으로 <베놈>을 보면 훨씬 더 재밌게 볼 수가 있다. ‘베놈’은 마블 최초의 빌런히어로다.

해서 <베놈>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건 주인공 에디 브록(톰 하디)과 베놈(톰 하디 목소리)의 모순된 관계다. 베놈은 심비오트라는 외계생명체 가운데 한 개체의 이름이다. 우주에서 온 심비오트는 지구에서 혼자 살수가 없다. 숙주가 반드시 필요한데 주로 인간에게 달라붙어 그를 괴물로 만든다. 그러니까 심비오트와 결합하면 누구든 엄청난 괴력을 지닌 괴물로 변한다. 주로 파괴를 일삼는 악당이 된다.

그런데 에디는 그냥 인간일 때 아주 정의감이 투철한 열혈기자였다. 진실을 위해서라면 몸을 사리지 않았는데 거대 기업인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뒤를 파다가 그만 직장에서 잘리고 만다. 생명연장 기업인 라이프 파운데이션은 병과 각종 사고로부터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약과 처방을 개발하는 선한 기업이지만 그 과정에서 노숙자들을 실험용 쥐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심비오트도 불치병의 치료를 위해 그들이 우주에서 갖고 왔다.

아무튼 에디는 선한 일을 하려다 직장과 애인, 집까지 모두 잃게 되는 삶의 모순 앞에서 방황하게 되고, 그 무렵 심비오트를 만나게 된다. 에디 몸에 붙은 심비오트의 이름이 바로 베놈이었다. 그러니까 베놈은 선한 에디와 악한 베놈이 결합해 탄생했다. 결국 영화는 그를 통해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말하고 있는 셈이다. 주기적으로 사람과 같은 다른 생명체의 뇌와 간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베놈은 대체로 악하지만 가끔 더 큰 악과 맞서며 영웅 노릇도 한다. 바로 빌런히어로가 된다.

그건 대다수의 평범한 우리 인간들도 마찬가지. 오늘도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짓밟고 올라서려는 악당들이지만 가끔은 선행도 하면서 산다. 솔직히 누구든 마음속에 베놈(악당) 한 마리쯤 달고 살지 않나. 그건 사실 모순이 아닐 수도 있다. 이곳에서의 삶이 그렇다. 아무리 비싸고 고급진 음식을 먹어도 결국은 똥으로 다 나온다.

하긴. 중국집에서도 가장 많이 팔리는 건 자장면이 아니라 짬뽕이라고 한다. 누구는 착하고, 누구는 못됐다고? 그런 당신에게 유머감각까지 탑재한 베놈이 말한다. “아니. 틀렸거든. 인간은 원래 다들 짬뽕이야. 선과 악이 공존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2018년 10월 3일. 러닝타임 107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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