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짜릿한 일탈을 꿈꾸며
오늘도 짜릿한 일탈을 꿈꾸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0.10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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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일탈(逸脫)을 꿈꾼다. 일탈은 도박이나 마약, ‘내로남불’같이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지만, 현실에서 잠깐 벗어난 일탈은 오히려 삶을 더욱 안정되고 풍요롭게 해준다.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일상이 답답할 때는 일탈을 꿈꾸며 여행을 떠난다.

내 고향은 강원도 두메산골이다. 어렸을 때 살던 곳의 기억은 우리 동네를 병풍처럼 둘러싼 높은 산이다. 그때부터 여행에 대한 충동이 있었던 것 같다. “저 산을 넘으면 무엇이 있을까?” 여섯 살 때쯤 생애 최초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일단 마을을 벗어나 신작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갔다. 다리가 보였다. 다리를 반쯤 건넜는데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다리 건너편에 한센인들이 산다는 동굴이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때마침 저녁이 되어 어둑해졌고 동굴 입구에 쳐놓은 가마니가 들리더니 한센인이 나오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뒤돌아서 집까지 달음질쳐 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후 며칠 심하게 앓았고 나의 첫 여행은 그렇게 끝났다.

초등학교 3학년으로 기억한다. 우연히 쥴 베르느의 ‘15소년 표류기’를 읽게 되었다. 못해도 2~30번은 읽었던 것 같다. 밤마다 내가 무인도에서 재미있게 사는 모습을 상상하며 잠자리에 들곤 했다. 초등학교부터는 도시에서 살았는데, 그때도 멀리 변두리에 사는 친구 집을 일부러 찾아가 물고기도 잡고 다슬기도 줍곤 하면서 일탈에 대한 갈증을 풀곤 했다.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면서 처음 아르바이트를 했고, 첫 소득으로 제일 먼저 남대문시장에 가서 텐트를 비롯해 캠핑도구를 장만했다. 그 당시만 해도 여행 혹은 바캉스란 단어가 생소한 때였다. 그 다음은 “안 가겠다”는 친구들을 꼬드겨서 설악산으로 캠핑을 떠났다. 이것이 처음 성공한 여행이다. 그 다음엔 거칠게 없었다. 동해안으로 지리산으로 거제도로 해외로 숱하게 여행을 갔다. 결혼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동안은 출장지별로 맛집을 찾아다니는 먹방 여행도 했고, 커피에 빠졌을 때는 전국 유명 커피숍을 순회하며 SNS에 커피 맛을 올리며 야호선(野狐禪)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그러다 나이가 드니 혼자 다니는 여행이 많아지고 이게 더 익숙해지고 편해졌다. 일이 안 풀리건 잘 풀리건, 일상이 무료하건 아니건 상관없이 습관적으로 길을 떠난다. 아무래도 생업이 있으니 당일치기나 길어야 2박3일이다. 비가 오면 우산 쓰고 천변을 거닐고 눈이 오면 설산을 헤맨다. 일주일에 한번 꼴은 차를 몰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나만의 힐링 시간을 갖곤 한다. 물론 가족이나 지인과의 여행이 더 재미있고 추억거리를 쌓는 건 사실이나, 혼행을 하면 나 자신과 대화를 하고 스스로 돌아보는 기회가 많아진다. 그러면서 내 주위에 있는 많은 분의 소중함과 고마움도 느끼게 된다.

지금도 혼자 여행을 떠날 때마다 일탈할 때의 짜릿함을 느낀다. 마치 고등학교 시절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땡땡이치던 때가 생각난다. 아드레날린이 샘솟고 숨이 가빠지곤 했다. 모든 여행이 즐거울 수는 없다. 괴롭고 생각하기도 싫은 여행도 제법 있었다. 친한 사람끼리 가서 틀어지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게 여행의 묘미이며 뒤따르는 일탈에 대한 대가다.

나의 소소한 일탈, 즉 여행은 언제까지 갈까. 불문학 교수인 김화영의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의 한 구절로 대신한다. “더블린에서 조그만 자동차 한 대를 세내었다.(중략) 드디어 더블린으로 돌아왔다. ‘아 목동아’가 노래하는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경치 속을 헤매고 다닌 여정이 꿈인 양 행복했다.(중략) 렌터카 회사의 텅 빈 마당에 댕그라니 내려놓은 내 트렁크를 바라본 내 허망감은.(중략) 아마도 언젠가는 이 작은 트렁크마저도 두고 떠나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대표이사/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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