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파괴에 정부·지자체가 앞장서다니
한글 파괴에 정부·지자체가 앞장서다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0.09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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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527돌에 즈음해 의미 있는 보도자료나 기사들이 전파를 탔다.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것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윤상직 의원(자유한국당)이 정부 여러 부처의 보도자료들을 바탕으로 9일 내놓은 비교분석 결과다. 윤 의원은 결론삼아, 정부 부처의 업무홍보용 보도자료 가운데 한글사용법 오류가 가장 많은 부처로 중소벤처기업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꼽고 우리글은 공공기관부터 제대로 지켜야 할 것이라고 질타했다.

윤 의원의 지적은 국립국어원에서 제출한 자료를 근거로 한 것이니 전문성과 신뢰성을 동시에 갖춘 지적이라 할 수 있다. 국립국어원 자료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6년부터 지난 8월까지의 보도자료 중 각각 67건과 62건이 국립국어원의 개선 권고 지적을 받았다.

그 다음으로 많은 부처는 기획재정부와 외교부로 각각 58건과 53건 이었고, 산업통상자원부도 46건이나 됐다. 다만 과기부 관련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각각 3건과 1건에 그쳤다.

윤 의원은 특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자료를 본보기로 들며, 맞춤법 오류가 많은 것은 정확한 표현을 모른 채 외국어를 자주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예를 들어 지난 2월 7일 자 보도자료에서는 ‘생존율’을 ‘생존률’이라 적었고 3월 9일자 보도자료에서는 ‘대약진’을 ‘퀀텀점프’라고 표기했다는 것이다. 윤 의원은 “과기부가 계속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은 공공기관으로서 직무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윤 의원의 다음 말에는 누구라도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그는 보도자료 끄트머리에서 “우리글과 우리말에 대한 사랑은 공공기관부터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한글날에만 강조하지 말고 평소에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연합뉴스도 12명의 지방 주재기자들이 올린 흥미로운 기사를 <‘세종대왕님이 우신다’…한글 파괴에 앞장서는 지자체들>이란 제목으로 전송했다. 이 ‘전국종합’ 기사는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와 반포를 기념하는 한글날이 572돌을 맞았지만, 지자체는 여전히 외래어가 뒤섞인 알쏭달쏭한 행정용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꼬집었다. 또한 “한글로 바꿔 쓸 수 있는 행정용어를 외래어로 쓰거나, 한글과 외국어를 뒤섞어 신조어를 만드는 등 지자체의 한글 파괴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가장 과학적인 문자를 갖고도 굳이 의미가 불분명한 외래어를 행정용어로 고집하는 지자체의 관행에 개선이 요구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행인지 불행인지 이 기사에 ‘울산 발(發)’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울산의 지자체들이 문제의식이 질적으로 낫고, ‘한글학자 외솔 선생의 고장’이자 ‘한글 중심의 도시’답게 모든 면에서 앞서 간다고 장담할 만한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가 없다. 울산시와 중구를 비롯한 5개 자치구·군 모두 겸허한 마음으로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 일에는 지자체의 수장 즉 시장과 구청장·군수부터 앞장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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