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 국가정원 지정, 보완 잘하면 연내에 될 것”
“태화강 국가정원 지정, 보완 잘하면 연내에 될 것”
  • 김정주
  • 승인 2018.10.09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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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구 무궁화연구소장·원예학박사
심경구 무궁화연구소장 ·원예학박사.
심경구 무궁화연구소장 ·원예학박사.

 

국내 원예학계에서 ‘심경구’ 하면 ‘무궁화박사’로 통할 만큼 그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또 울산 사람치고 그의 본적이 ‘울산시 남구 야음동 116번지’라는 사실을 아는 이 역시 아무도 없다. 그가 먹고 자고 일하는 생활근거지가 멀리 떨어진 충남 천안시 성환읍의 ‘무궁화연구소’인 탓이다.

그 때문인지 심경구 박사(78, 원예학·조경학,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울산에 내려오는 일은 가물에 콩 나듯 드물다. 지인의 경조사나 특별초청이 있어야 기대함 직한 일이다. 그러기에 그를 만나고 싶었던 이들에게 지난 4일은 길일이나 다름없었다. 이날 오후 2시, 울산시는 시청 본관 4층 중회의실에서 심 박사를 비롯한 사계의 전문가 7인을 초청, ‘태화강 무궁화정원 개선방안 자문회의’를 가졌다. 태화강 국가정원 지정을 위한 전략회의 성격을 겸했다.

울산사랑… 신품종 11가지 이름표에

이날 오전 심 박사와 처음으로 만난 곳은 장생포 근린공원 5D입체영상관 앞 언덕배기에 가꾸어 놓은 무궁화동산. 지난해 7월 문을 연 이 무궁화동산은 심 박사가 개발한 ‘태화’를 비롯한 무궁화 20종 5천548그루가 고향에 대한 그의 진한 애정과 함께 숨 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때마침 이 무궁화동산의 산파역인 권용철 남구청 녹지주무관도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를 알아본 심 박사가 그를 의식하며 한마디를 건넸다. “이런 분을 인터뷰해야 했어. (동산이 조성되기까지) 정말 수고가 많았지.” 그러면서 팻말을 손으로 가리켰다. ‘선암1호’란 글씨가 선명했다. “이거 내 작품이야. 본디나무(시조목)는 지금도 야음동에서 잘 자라고 있지.”

잠시 짬을 내서 권 주무관에게 설명을 청했다. “보시다시피 이곳 무궁화들,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지 않습니까? 심 박사님 조언대로 자동관수시설(스프링클러)을 설치해 밤마다 돌아가게 해놓았더니 지난여름 그 극심한 가뭄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었지요.”

심경구 박사는 성균관대 조경학과 교수로 재임할 때나 13년 전 성환에 무궁화연구소를 차린 이후나 한시도 고향 울산을 잊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장생포 무궁화동산에 심어놓은 무궁화들은 온통 ‘심경구 표’ 일색이다. (이 때문에 그에게 비판이 쏟아질 될 때도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남다른 고향사랑이 무궁화 신품종을 이름표에다 남긴 것일까?

사실 심 박사가 새로 붙인 무궁화 이름에는 울산과 유관한 것이 적지 않다. ‘선암(1∼7호), 태화(강), 야음, 학성, 문수, 대현, 여천, 제일중, 처용’에 이르기까지 자그마치 11종을 헤아린다. 이름표가 달라진 경우도 있었다. “‘태화강’은 ‘강’ 자를 넣을 수 없다 해서 그냥 ‘태화’로 올렸고, ‘제일중’은 3년 전 ‘삼일홍’으로 바꾸었지.”

제일중 5회…대현국민학교 자리엔 굴뚝만

‘제일중’과 ‘삼일홍’을 얘기할 때마다 심 박사의 안광이 빛을 달리했다. 그러고 보니 이날 KTX 울산역에서 장생포 고래문화마을로 심 박사를 자가용으로 모신 윤영석 울산마리타임 대표도, 뒤늦게 점심 자리에 합석한 최영수 울주문화원 부원장(전 MBC·JCN 전무)도 똑같이 울산제일중 5회 동기다. 심 박사가 한마디 더 덧붙였다. “일중 졸업할 때 2등을 했지. 문교부장관상으로 사전을 받았던 기억이 나.”

‘삼일홍’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것은 헤어질 무렵의 일이었다. 심 박사는 울산 지인들에게 선물할 요량으로 시집을 한 아름 안고 왔다. 겉표지부터가 여성스러운 연분홍색 시집의 이름은 ‘삼일홍의 꽃방석’. 그 바로 밑에 ‘김문자 제2시집’이란 부제가 달렸다.

그제야 감이 잡혔다. “올해가 결혼 50주년”이라며 몇 번이고 되뇌던 심 박사의 의중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결혼날짜에 대한 그의 기억은 또렷했다. “1968년 4월 7일에 결혼했고 혼인신고는 이틀 후인 4월 9일 대현면사무소에서 했지. 여천동 887-5번지로. 그땐 혼인신고를 본적지에서 하게 돼 있었어. 면사무소는 공업단지가 되면서 없어졌지만…. 여천동 887-5번지엔 알루미늄 공장인가가 들어섰고, 내 다니던 대현국민학교 자리엔 정유공장 굴뚝이 들어서 있다던가.

일제 때 일본사람들이 지어놓은 벽돌집이 있었는데 만주지방으로 실어 나르려고 기름을 뽑아내던 정유시설이 그때부터 있었어. 울산항 기본계획도 일인들이 미리 짜 놓았던 거야.” 그는 고향 이야기를 좀 더 계속하고 싶어 했다. “여천오거리에 있었던 배 과수원이 우리 집이었어. 태풍 사라호 피해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지만….”

“올해 결혼 50주년…아내가 기념시집 냈지”

결혼 50주년을 기념해 부인 김문자 여사(74)가 남편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 펴낸 시집! 눈여겨보니 그 속에는 여린 여심으로 수놓은 120편의 시가 연분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길이가 짧은 ‘삼일홍의 꽃방석’과 ‘연애편지’ 두 편을 잠시 꺼내 보자.

<둥실둥실 떠다니는/ 내 마음/ 행복바이러스 되어/ 꽃방석에 내려앉습니다// 당신이 행복하면/ 친구는 25%,/ 친구의 친구는 10%,/ 친구의 친구의 친구는 5, 6%/ 행복감을 더 느낀다 합니다.>(‘삼일홍의 꽃방석’) <사랑하는 당신에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옛날 당신 편지는/ 간단했습니다/ 수학공식처럼// 아쉬울 겁니다/ 지금은/ 핸드폰에/ 수학공식 날릴 수 없으니// 그래도 더 좋습니다/ 어부인 사랑해요/ 이 말이….>(‘연애편지’) 오세영 서울대 명예교수는 ‘김문자의 시세계’에서 그녀의 시를 ‘아름답고도 지순한 시’라고 평했다,

부인의 시집에 관한 자부심 넘치는 심 박사의 이야기는 조금 더 이어진다. “제1시집 이름은 ‘릴킴의 꽃방석’이었고 결혼 40주년을 맞아 처음 펴낸 시집이었는데 아내는 손자 손녀를 생각하며 냈다고 하지. 그땐 출판기념회를 서울서 거창하게 했지.” 그러면서도 그는 유독 ‘결혼 50주년’에만 밑줄을 긋는 것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시인 김 여사가 ‘제2시집은 남편을 위하여’라는 말을 후기에 남긴 때문임이 분명하지 싶었다.

시에도 등장하는 ‘릴킴’은 심 박사가 처음 개발해 미국, 캐나다에 특허를 내면서 붙인 품종 이름. 한국의 대표 성씨인 김씨(Kim)와 ‘작다’는 뜻의 영어 ‘little’을 합쳐서 지었고, 5만 그루에 대한 로열티로 매년 5천 달러씩을 받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사전에 ‘팔불출’이란 단어는 없다는 듯 4년 연하인 부인과 자식 자랑을 이어갔다. “아내는 서울 정신여고와 서울대 농가정학과를 나왔지.” 자신은 서울대 농학과를 졸업했으니 대학후배를 아내로 맞이한 셈이다. 슬하에 2남. 큰아들 현식(49)씨는 KAIST 나와 삼성연구소에서, 작은아들 정식(48)씨는 뉴욕서 전공한 디자인 사업에 열정을 쏟고 있다.

전문가들 “태화강 정원에 다양하게 심어야”

이날의 본론 ‘태화강 무궁화정원 개선방안 자문회의’에서 밝힐 소견을 먼저 듣고 싶었다. 참고로, ‘태화강 무궁화정원’은 지난해 울산시가 태화강 국가정원 지정을 겨냥해 태화강 지방정원 내 1만㎡에 심혈을 기울여 조성한 무궁화동산이다. 얼마 전 진행된 산림청 심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국가정원 지정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눈에는 미흡한 점이 선명하게 보이는 법이다. 시는 ‘미완의 큰 그릇’에 완성의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이날 전문가들을 초빙했고,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환경정책과장과 녹지공원과장이 직접 참여하는 성의를 보였다.

심 박사가 자신의 지론을 귀띔했다. “여기 장생포 동산처럼 자동관수시설(스프링클러 시설)부터 갖추어야 해. 그리고 외국인 관광객들도 유치하려면 중국산 무궁화라 할 ‘목부용’이나 아열대성 기후에서 잘 자라는 베트남산 무궁화 같은 것도 심으면 더 좋지.”

태화강 지방정원의 국가정원 승격 가능성을 넌지시 캐물었다. 돌아온 답은 의외로 긍정적이었다.

“자문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잘 보완만 하면 연내 지정될 가능성이 크지. 우선 경쟁지역이 없는데다 이번에 전국 3위를 차지한 태화강 무궁화정원이 건재하기 때문이지. 시에서 열심히 하면 안 될 것도 없지.”

이날 자문회의에서는 △산림청이 권장하는 품종과 울산에만 가면 볼 수 있는 전통적 재래종을 비롯해 다양한 품종의 무궁화를 심고 △태화루와 연계시킬 수 있는 무궁화 거리를 조성하고 △학생을 대상으로 한 무궁화 백일장·사생대회 같은 것을 열어 무궁화 애호 인구의 저변을 넓히자는 등의 다양한 조언들이 쏟아졌다.

중국서도 알아주는 ‘세계적 무궁화 권위자’

심경구 박사는 팔순을 바라보는 연세임에도 곧 중국에서 펼쳐질 기분 좋은 일정을 두고 소풍을 앞둔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모습이었다. 15일부터 19일까지 촉나라 유비와 장비의 넋이 서린 사천(四川, 스촨)성(省)의 성도(청두, 成都, 2013 인구 701만)에서 열리는 ‘국제 무궁화 심포지엄’에서 1시간짜리 특강을 베푸는 것이 그것.

“사천성만 해도 인구가 1천20만 명에 성도의 시화가 무궁화와 같은 아욱과의 목부용(木芙蓉)이야. 지금도 가면 꽃을 볼 수 있지.” 울산 출신 무궁화박사가 이미 세계적 전문가 예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울산시민들에게도 자긍심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느낌이 강렬하게 전해져 왔다. 지금까지 80여 품종을 개발, 국립종자원에 그 절반인 40여 품종에 대한 특허 등록을 했고 미국과 캐나다에 4품종, 유럽에도 2품종이나 같은 등록을 해 놓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않겠는가.

그의 자부심은 두산그룹 박용성 회장의 ‘나라꽃 무궁화 보급사업’에 관한 공식 발표문(‘두산 무궁화 보급사업의 출사표’)에서도 읽을 수 있다. “(전략) 무궁화 보급운동을 제대로 하려면 아름다운 꽃을 많이, 오래 피게 하는 품종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내는 육종(育種)에는 심경구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권위자입니다. (중략) 심 박사는 수년간 개발해 온 무궁화 중 6개 품종을 추천해 주었고, 전속재배권을 양도받아 두산2017, 매헌, 연강 등의 이름으로 국립종자원과 특허청에 등록을 마쳤습니다.” (이 중 ‘매헌’은 두산그룹이 심 박사의 ‘선암’ 품종을 사들여 새로 붙인 이름이다.)

심완구 전 울산시장의 2년 아래 사촌동생이기도 한 심경구 박사의 취미는 시간 나는 대로 고향 사람들과 경기도 용인의 골프장을 찾아 시간을 보내거나 남서울대 체육과에 딸린 수영장을 찾아가 건강을 다지는 일이다.

글= 김정주 논설실장·사진= 윤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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