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處容)과 마채(馬彩)
처용(處容)과 마채(馬彩)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0.07 20: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년 10월이면 울산은 ‘용’으로 한바탕 시끌시끌해진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울산공업축제와 시민대축제를 거쳐 1991년 처용문화제로 이름이 바뀌면서 생긴 일이다. 용(龍)이 사람이 될 수 있나? 자기 마누라를 역신이 범해도 노래하고 춤추며 물러날 수 있나? 현재까지 처용에 대한 개념은 지역 무당, 아라비아 상인, 지방 호족 등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지난 2일 울산시의회 의사당 대회의실에서 ‘처용설화 축제의 예술적 완성’을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울산시가 주최하고 울산문화재단이 주관한 제52회 처용문화제 기념 학술행사의 하나였다. 임재해(안동대 명예교수)는 ‘처용설화의 재인식과 처용 춤의 문화자산 가치’라는 발제를 통해 “처용은 동해용왕을 섬기는 세습무의 아들 7명 중 하나다. 지역의 세습무는 무당이자 지역 정치지도자 구실을 한다”고 주장했다.

채희완 교수(부산대 명예교수)는 ‘살풀이를 통한 신명남(처용설화, 처용굿, 처용가무극회, 마당춤을 중심으로)’이란 주제로 처용이 장애를 가진 꼽추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처용이 꼽추였고 처용춤은 곱사춤이었음을 밝히는 글이 나왔다. 조선 왕실에서 처용춤을 나례(儺禮, 궁중 굿) 끝에 벌인 것이나 영남지역에서 곱사춤이나 문둥춤을 버리지 못하는 건 꼽추 처용이 질병과 재앙을 물리치는 ‘땅서낭’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학술심포지엄을 통해 처용설화는 새롭지 않은 것과 새로운 것을 도출해냈다. 다양한 관점 탓에 처용설화에 대한 인문학적 재해석이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이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처용이 꼽추라는 해석에 이어 앞으로 해석이 어디까지 갈지, 기대감도 크다.

처용(處容)과 마채(馬彩)는 모두 용(龍)과 관련이 있다. 처용은 용이 처음으로 사람이 되면서 붙여진 이름이고, 마채는 용의 다른 이름이라고 본다. 용은 지역마다 다양한 상징적 이름이 있다. 영동지방 강릉의 관노가면극에서는 ‘장자마리’, ‘시시딱딱이’로 부른다. 영남의 동래야류, 고성오광대에서는 마두(馬頭)의 풀이말 ‘말뚝이’라고 부른다.

울산만 하더라도 마채(馬彩·馬菜), 마두(馬頭), 용검(龍黔), 장검(長黔), 검단(黔丹) 등 다양한 이름으로 나타난다. 옛날에는 외황강을 ‘마채’, 동대산을 ‘마두’라고 불렀다. 태화강 깊은 물속을 ‘용검소’, 굴화의 습지를 ‘장검’(지금은 흙으로 메워져 없어짐)이라 불렀다. 금단(黔丹)일 것 같은 ‘검단’은 현재 검단(檢丹)으로 표기한다. 땅 모양에서 실제와 상징의 관점을 찾을 수 있다. 두왕천과 청량천 두 샛강 사이에 길게 이어진 땅을 두고 “길쭉하게 생긴 것이 흡사 말채찍 모양 같다”거나 “검푸른 바탕색에 오색찬란한 무늬로 수놓았으니 용을 의미하는 마채”라고 풀이한다.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 원형과 현상의 차이일 것이다.

현재는 마채를 ‘말채찍’으로, 마두를 ‘말머리’로 해석하고, 용검과 장검은 의미조차 희미해졌다. 말뚝이의 의미를 용의 은유인 마채(馬彩)나 마두(馬頭)에서 찾지 않고 양반을 조롱하는 구종배(驅從輩) 마부(馬夫)로 착각하는 것은 현상에만 집착한 결과라고 본다.

고향 울산과 마채염전을 바라보며 화창(華倉)마을에서 꿈을 키워온, 말쑥하고 품위 있으면서도 흰색 와이셔츠가 썩 잘 어울리는 어떤 분을 알고 있다. 멀리서 보아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그는 은물결 머리칼, 몸에 밴 인사성과 깔끔한 차림으로 평생 공무(公務)를 수행해 온 분이다. 얼마 전 그와 꽤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그는 앞으로 한두 달 지나면 인생 이모작을 생각할 것이다. 그중 하나가 고향 화창마을에 대한 사랑의 실천, 마채염전을 중심으로 한 문화콘텐츠 개발이다. 오랜 시간 나눈 대화에서도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마채염전 도랑에서 꼬시래기를 잡고, 오대·오천 갈대밭을 누비며 털게를 잡았으며, 돌박산으로 소 먹이러, 은곡산으로 나무하러 다녔다고도 했다. 두왕천·청량천을 제 집같이 드나들었고, 외황강 하류에서는 파래를 뜯고 담치를 잡았다고 했다.

마채염전은 그 모양이 긴 말채찍을 닮았다 해서 구전으로 그렇게 불리고, 지금도 무척 자랑스럽게 여겨진다. 그러나 앞으로 화창마을에서 주민들 스스로가 의미 있는 행사를 지속적으로 갖고자 한다면,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지금껏 그리 불러왔으니 상관없다는 생각은 지역의 정체성을 지워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명을 비롯한 갖가지 이름에는 정체성이 녹아있어 풀이할 때 신중함이 요구된다. 화창의 ‘화(華)’는 화정, 화산과 같은 지명이나 지형과도 맥을 같이 한다. ‘창(倉)’은 남창이나 서창과 그 역할이 같다. 넓은 들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물이다. 필자는 마채를 물의 신(神)인 용의 메타포라고 본다. 확대해석하면 ‘화려한 마채가 화창마을을 풍요롭게 도와준다’는 의미이다. 짧은 세월 말채찍 모양의 땅에서 소금밭을 일구었다는 것에 집착한 나머지 ‘말채찍’으로 해석하는 것은 마채의 본질과는 십만팔천리나 떨어진 것이 아닐까?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