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에게 부끄러운 한글의 현주소
세종대왕에게 부끄러운 한글의 현주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0.04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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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辭典)에도 시쳇말로 ‘유통기간’이 필요할까?

필자는 지금도 ‘영어 콘사이스’(동아출판사 판)를 애용한다. 1966년 12월 10일에 펴낸 이 사전의 당시 가격은 800원이었다. 세상에 사전의 족보 격인 ‘책의 마지막 장’을 들쳐볼 위인이 어디 있겠느냐만 이 글을 쓰기 위해 짐짓 살펴보았다. 올해로 꼭 52년이 되었으니 골동품 반열에 올려도 전혀 손색이 없으리라.

지금도 사용하는 데 큰 불편을 못 느낀다. 오히려 손에 익고 정감이 더 가는 탓에 죽을 때까지 활용할 계획이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사전은 명실 공히 권위와 적확 무오(的確 無誤)를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펴낸 해가 무슨 걸림돌이 된단 말인가. 많은 독자가 사랑하고 신뢰를 보낸다면 그 따위 신조어 몇 개, 슬랭 몇 조각 모른다고 뭐 그렇게 대수로울쏜가. 앞뒤 문맥으로 유추해도 충분한 노릇이다.

소싯적(중학생 때)에 배운 영문법으로 70평생 불편 없이 잘 써먹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문법체계가 불변이라는 말일 것이다. 한때는 원어민을 상대로 원자력 강의도 거침없이 해댄 전력이 있다. 아무 불편 없이 말이다.

시건방을 좀 떤다면, 영어가 우리말보다 쉽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검은머리 양키’쯤으로 오해까지 받았을 정도였으니…. 영문법에 무한한 찬사를 보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반면 우리말과 우리글은 왜 이렇게 어렵고 변화무쌍한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세종대왕님께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곤 한다.

‘쉽고, 바르고, 편하게’라는 큰 원칙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무원칙이 원칙인양 조령모개로 바뀌는 일이 예사인데다 혼돈스럽기까지 하니, 속된말로 앞발 뒷발 다 들 지경이다. 소리 나는 대로 적고 예외를 최소한으로 줄이면 어디 덧나기라도 하는가? 한때 ‘자장면-짜장면’ 논쟁으로 온 나라를 들쑤신 해프닝도 돌아보면 쓴웃음만 나온다.

우리나라 본토 사람도 힘겨운데 외국인에게는 이런 극한의 고문이 또 어디 있을까,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고집스럽게 고치지 않아도 좋다. 한 가닥 희망적인 것이 있다면, 머지않아 통역 로봇(Robot)이 주름 잡는 날이 오면 “만사 오케이”가 될 거라는 기대감이다.

혼돈스러운 우리말과 우리글의 심각성은 모두가 다 인정한다. 날마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각종 간판은 외래어 일색이고, 국적불명의 선전물들은 현기증마저 일으킨다. 라디오-TV 방송 출연자는 또 어떤가? 외국어를 적당히 섞어 써야 권위와 체면이 서는지. 듣다 보면 역겨울 때가 적지 않다. 멋진 우리말인 OO동사무소가 졸지에 OO주민센터로 둔갑하지 않나…. 거리 이름이나 아파트 명칭은 발음이 어렵고 글자 수도 많아서 순서를 정확히 외우려면 머리에 쥐가 날 정도다.

국립국어원의 발표를 보면 우리말 우리글 혼돈상의 60%가 한자에 기인하는 모양이다. 사실이 그렇다면 이참에 ‘국·한 혼용 정책’을 대못으로 박으면 어떻겠는가? 우리말과 우리글은 영원히 우리가 가꾸어 나갈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잘못이 우리 정부 책임부서의 무사안일과 국민적 무관심의 결과는 아닌지? 정부는 앞으로 ‘표준국어대사전’을 보급판으로 찍어서 무상으로 나눠 주겠다는 약속을 대통령 공약 제1호로 정하면 어떻겠는가? 저 청와대 대통령 관저에서부터 마라도 김서방 집까지 가보(家寶)로 1권씩 가질 수 있게…. 그 때까지는 살아야지!

박재준 NCN 위원·에이원공업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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