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
꿈을 이루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0.0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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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마음상태를 날씨에 비유하면 눈보라가 몰아쳐 앞길이 하나도 안 보이는데 홀로 정상을 향하는 기분이다. 정상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도통 보이질 않는다. 벌써 몇 개월째다. 그러던 중 지인에게서 좋은 글을 받았다. 리더십 전문가인 존 맥스웰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꿈을 이루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이 생각을 바꾸지 않고 결과만 바꾸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순간 “아!” 하고 눈앞의 눈보라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지금의 피유란을 창업하기 전에 한 기업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할 때였다. 주업무는 폴리우레탄폼 단열재 개발이었다. 당시 폴리우레탄폼 단열재는 미국·영국·독일 건축법을 만족하는 건축용 단열재를 개발하는 수준이었다.

평택·인천·부산의 LNG탱크기지 등에 이미 적용한 상황이라 국내에서 신설한 건축법 성능쯤은 쉽게 만족하리라 자신하고 만만하게 접근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한국 건축법상 시험법은 시험체 표면을 750℃까지 가열해 불을 붙이게 한다. 하지만 글라스울(유리면) 단열재는 660℃가 되면 녹아 버린다. 한국 건축법으로 시험하면 불연재나 준불연재는커녕 난연재도 못 된다는 의미다.

필자는 플라스틱공학을 전공했다. 내열성 플라스틱이라도 400℃를 견디는 플라스틱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시 열안정성분석기 등 기기분석 자료를 활용해 폴리우레탄폼이 이 시험규격을 통과할 수 없다는 보고서를 작성해 영업부서 총괄임원에게 직접 보고했다. 그럼에도 영업부서에서는 고객사의 요청이라며 연구소에 계속 개발을 요청해왔다. 필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영업팀에 “바이엘, 바스프, 다우 등 글로벌 회사에 확인부터 해봐라”고 회신하고 국내외 유명 연구소와 대학에 문의했다.

그러는 사이 우리나라 단열재 시장에선 철판을 씌운 글라스울 판넬이 난연재 및 준불연재로 승인받아 판매량이 증가했고 폴리우레탄 판넬 시장은 감소했다. 고객사와 영업부서의 요청은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한숨만 내쉬던 어느 날 늦은 시간 담배를 꺼내 물었다. 몇 모금 안 빨았는데 담배는 반 이상 타들어갔고 재는 원형 그대로였다. 그 재에 불을 붙였다. 예상대로 불이 붙지 않고, 연기도 나지 않았다. 순간 실없는 사람처럼 혼자 히죽히죽 웃었다. 750℃의 열과 불에 안 타고 견디는 물질을 드디어 발견했기 때문이다.

“탈 수 있는 물질이 표면으로 나오지 못하면 더 이상 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불에 타고 남는 재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했다. 6개월 후에는 한국 건축법의 준불연재를 만족하는 폴리우레탄 판넬 제품이 상업화되었다. 이 경험은 틀에 박힌 내 사고방식을 깨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연구개발이 안 되는 이유는 연구자가 선입견을 갖고 안 되는 이유만 찾으며 온갖 핑계를 대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큰 고민이 있었다. 작년에 개발한 신제품이 신규 화학물질이어서 환경부의 화학물질평가에 관한 법률에 따라 등록하기 위해 화학융합시험연구원, UNIST 등과 약 10개월간 노력했다. 그러나 환경부가 원하는 신규 화합물의 순도분석법을 찾지 못해 고민했고, 국민신문고까지 접속하여 필자가 원하는 결과로 바꾸어지기를 기대했다.

또 결과만 바꾸려고 노력하는 내가 우습다. 18년이 지난 오늘 다시금 웃음이 난다. 이제 다시 내 생각을 바꿀 차례다.

임호 (주)피유란대표이사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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