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에 하늘을 우러르며
개천절에 하늘을 우러르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0.01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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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사, 우사, 풍백을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로 내려와 개천하신 단군 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나는 감히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싶다.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연유에서였을까 하고…. 우리 겨레가 어렵고도 기나긴 고난과 극복의 역사를 오늘날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같은 땅에서 같은 말을 쓰면서 한민족이란 자긍심을 연면히 이어온은 덕분일 것이다. 가깝게는 조선조에 우국충절(憂國忠節)을 하늘같이 여긴 애국선열들의 심지 있는 행동이 지금까지도 우리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는 덕분일 것이다.

<가노라 삼각산(三角山)아 다시 보자 한강수(漢江水)야 /고국산천(故國山川)을 떠나고쟈 하랴마난/시절(時節)이 하 수상(殊常)하니 올동말동하여라.> 이 시조는 병자호란 당시 예조참판을 지낸 김상헌(金尙憲)이 남한산성에 들어가 최후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다가 볼모로 심양에 압송되어 가면서 느낀 소회를 적은 것이다. 김상헌을 중심으로 한 주전파(主戰派)는 결사항전을 주장하며 청(淸)나라와의 화의를 반대했으나 인조의 항복으로 심양으로 끌려간 삼학사(三學士=홍익한·윤집·오달제)는 끝내 참형을 당하고 만다. 이들의 심지와 그 높은 뜻을 개천절을 맞아 다시 음미해 본다.

1894년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의 지나친 가렴주구에 항거하는 민란이 일어났다. 손병희(孫秉熙)의 지휘 하에 1만 북접동학농민군이 청산(靑山)에 집결하고…. 이렇게 1년 넘게 이어진 동학농민운동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여기에 가담한 동학농민군은 뒤에 항일의병항쟁의 중심세력이 되었고, 그 맥락은 3·1독립운동으로 계승되었다.

이때 백범 김구는 동학군을 지휘했다. 황해도 동학군의 선봉장으로 해주성을 습격했으나 끝내 관군에게 패퇴하고 만다. 양반이었던 안중근의 아버지는 동학군 토벌을 포기하고 도리어 젊고 능력이 뛰어난 장수 김구를 발견하고는 그를 자신의 집에 숨겨준다. 이 인연으로 안중근과 백범은 친하게 된다. 이렇게 목숨을 건진 김구는 이후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이봉창의 동경 의거, 윤봉길의 훙커우(虹口) 의거를 지휘하고, 안중근은 이등박문(伊藤博文)의 가슴에 총알을 박는 데 성공한다.

우당 이회영(李會榮)은 1907년 4월 비밀결사독립운동 단체인 ‘신민회’를 발족하고 그 해 6월 ‘헤이그 특사’ 파견을 주도한다. 헤이그 특사 실패 후 그는 국외에 독립기지를 마련하기 위해 1910년 12월 여섯 형제와 가족 등 일가족 40여 명 전체를 거느리고 만주로 망명한다. 이때 여섯 형제는 약 600억원으로 추산되는 전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 자금으로 운용한다. 1911년 4월에는 이주동포들의 정착과 농업지도를 위한 ‘경학사’를 조직하는 한편 1911년 5월 광복군 양성을 위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다. 1919년에는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출신이 중심이 되어 항일(抗日) 비밀결사인 의열단을 조직함으로써 무장독립투쟁의 횃불을 밝히는 근간이 된다.

울산 출신 박상진(朴尙鎭) 의사는 1910년 평양 법원의 판사로 발령을 받았으나 조국이 경술국치로 일제의 식민지가 되자 이를 미련 없이 버린다. 이후 1916년에는 노백린(盧伯麟)·김좌진(金佐鎭) 등을 광복회에 가입시켜 광복단(光復團)으로 개칭한 후, 조국 광복을 위한 항일투쟁을 전개한다.

붓으로 독립을 외친 대표적인 울산인은 외솔 최현배(崔鉉培) 선생이다. 그는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국어사전, 조선어학회의 ‘큰 사전’ 편찬을 위해 노력한 끝에 한글 문법의 기본을 세운다. 그뿐만 아니라, 한글 공부를 위한 ‘한글 첫걸음’을 비롯한 각종 한글교과서 50여 책을 만들어 널리 활용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한자 대신 한글 쓰기, 세로쓰기 대신 가로쓰기로 한글의 편리성과 기능성을 향상시키는 일에도 크게 기여했다.

개천(開天) 이후 오늘 내가 여기에 있기까지 줄기차게 이어져온 우리네 역사의 숨결을 되돌아본다. 단군 할아버지로부터 김상헌과 3학사, 동학과 손병희, 3·1운동, 안중근, 김구와 한인애국단, 이회영의 신흥무관학교와 의열단, 박상진과 광복회, “한글이 목숨”이라고 한 최현배 선생에 이르기까지, 굽은 소나무 줄기처럼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굴곡진 끈으로 끊임없이 이어져온 우리의 위대함에 감복하며 새삼 열려있는 먼 하늘을 바라본다.

윤주용 울산시농업기술센터·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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