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두루미
여우와 두루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9.30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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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두루미는 예로부터 한국인의 정서에 친숙한 동물이다. 마을마다 지역마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을 만큼 풍부한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여우와 두루미가 사람과 같은 환경에서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는 일찍이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다. 이 교육적 우화는 주둥이가 짧은 여우와 부리가 긴 두루미를 모델삼아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배려하자는 마음공부가 그 바탕인 셈이다.

모두 아는 이야기이지만 이 우화를 요약하면, 여우의 생일에 초대된 두루미는 뾰족한 부리 탓에 여우가 내놓은 접시 속의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두루미는 여우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입구가 좁은 호리병 속의 음식을 대접한다. 두루미와 마찬가지로 여우도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마지막 장면은 같은 식탁에서 제각기 음식 먹기에 편리한 접시와 호리병을 골라 서로 웃으며 즐겁게 먹는 그림으로 끝을 맺는다.

여우와 두루미는 주둥이와 부리의 생김새가 달라 먹이를 먹는 방법도 다르다. 여우는 음식을 핥아먹지만, 두루미는 집어먹는다. 접시에 담은 같은 먹이라도 여우는 주둥이가 짧아서 음식을 핥아먹기가 편하지만, 두루미는 부리가 길어서 먹지를 못한다. 여우와 두루미를 모델로 삼은 것은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비유적으로 전하기 위한 것으로, 여우와 두루미를 통해 사회적 소통을 부각시킨 것이다. 이런 경우에 알맞은 사자성어(四字成語)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 할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 여우의 주둥이가 짧고 두루미의 부리가 긴 것은 자연환경에 알맞도록 진화된 것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실제로 보아도 여우의 짧은 주둥이와 쪽 찢어진 눈, 쫑긋 선 귀, 오똑 선 코는 깜찍하고 예쁘다. 그리고 두루미의 활짝 편 두 날개는 시원스럽고, 하늘을 향해 목을 길게 뻗어 우는 자태는 늠름하기 그지없다. 특히 겨울철 하얀 눈밭에서 한 쌍이 튀어 오르면서 구애하는 행동태를 보면 신기하면서도 후련한 느낌이 든다.

지난달에는 한동안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가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발 달린 여우와 날개 달린 두루미가 어딘들 걸어가고 날아가지 않겠냐마는 남한의 여우가 북한으로 가고, 북한의 두루미가 남한으로 왔다는 사연이 이슈가 됐다. 지난달 13일, KBS 1TV 은 ‘남북은 없다, 여우와 두루미’ 편을 방영했다. 같은 시간대의 다른 방송보다 시청률이 5%나 웃돌 만큼 국민적 관심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대강을 간추려 보자.

2012년부터 남한에서 여우의 종(種) 복원 사업을 추진한 이후 경북 소백산에서 방사한 여우 무리 가운데 암컷 한 마리가 약 36일 동안 260㎞를 걸어서 북한으로 갔다. 방송은 이 여우가 철책으로 막힌 휴전선을 어떻게 헤치고 왜 북한으로 갔을까 하는 의문점을 중심으로 전문가들과 함께 여우의 월북 경로를 추적하는 과정을 담았다.

2008년에 북한은 두루미와 두루미서식지 보존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국제두루미재단(International Crane Foundation)의 아치볼드(George Archbold) 박사와 손잡고 두루미 서식지였던 함경남도 안변평야를 복원하는 ‘안변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정종렬 도쿄 조선대 교수를 통해 안변의 두루미가 철원을 찾아온 과정을 소개했다.

여우가 북으로 이동한 것은 세력권의 정착을 위한 행동이며, 두루미가 철원을 찾은 것은 먹이 부족 현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우와 두루미가 시의적(時宜的)으로 이슈가 된 것은 “철책 넘어 북으로 간 여우, 남으로 온 두루미”라는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분단 73년의 세월을 삼킨 동족의 비극을 오버랩 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KBS 1TV의 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 것이 사실이다.

방송이 나간 뒤 불과 열흘 뒤, 전남 순천시는 흑두루미를 내세워 남북 교류협력 사업에 대한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순천시 관계자는 “순천만을 찾는 두루미가 평화의 메시지를 물고 북쪽으로 날아가 남북 평화를 앞당기는 전령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남북 교류를 추진할 계획”(연합뉴스.2018.9.24)이라고 말했다. 브레인 스토밍(brain-storming=한 가지 주제롤 놓고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를 회의를 통해 구하는 방법)을 활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옛 사람들은 울산의 역사적 자연환경을 개지변(皆知邊), 굴화(屈火) 등으로 불렀다. 이들 지명에는 ‘넓은 들’ 혹은 ‘넓은 습지’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이는 울산이 넓은 습지를 지닌 덕분에 두루미의 서식처로 자리 잡을 수 있었고, 울산이 ‘학의 고장’이란 뜻의 ‘학성(鶴城)’이라는 별호를 받을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울산의 브레인들이 독창적인 울산을 통 크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남북한 교류가 순풍을 타고 있는 요즘, 북한의 두루미 한 쌍이라도 기증받아 ‘학의 고장’ 울산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키웠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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