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좀비-‘호스틸’
사랑, 좀비-‘호스틸’
  • 이상길 기자
  • 승인 2018.09.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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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호스틸'의 한 장면.
영화 '호스틸'의 한 장면.

 

<호스틸>은 독특한 영화다. 영화가 시작되면 폐허로 변한 세상이 펼쳐지는데 그게 좀비들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여주인공인 줄리엣(브리터니 애쉬워스)은 홀로 작은 트럭을 몰고 다니면서 좀비들을 피해 이곳저곳에서 음식과 생필품을 챙기며 등장한다. 그런데 캠프로 돌아오던 중 그녀는 그만 차량 전복사고를 겪게 되고, 한 쪽 다리를 크게 다치면서 뒤집힌 차량 안에 꼼짝없이 갇히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어둠을 뚫고 한 명의 좀비가 뒤집힌 차량으로 접근하면서 살기 위한 줄리엣의 처절한 사투가 시작된다.

이쯤 되면 누구든 이 영화는 좀비가 등장하는 공포물로 생각할 것이다. 줄리엣의 사투를 지켜봐야 하는 관객 입장에서도 이제부터 놀라거나 두려움을 느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터. 하지만 그 순간, 영화는 난데없이 줄리엣의 회상을 통해 멜로 영화로 장르 전환을 감행한다. 사실 차량 전복 사고도 연인이었던 잭(그레고리 피투시)과 함께 찍은 사진이 바람에 날려가면서 그것을 잡으려다 일어나게 됐다. 사진 속 잭을 바라보는 줄리엣의 애틋한 눈빛에서 그는 지금 죽었거나 좀비가 됐을 거란 예상 정도는 해볼 수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죽음 앞에 서면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먼저 떠올리기 마련. 이제 영화는 좀비와 사투를 벌이는 줄리엣의 현실과 그녀의 회상을 통해 연인이었던 잭과의 과거 러브스토리가 번갈아가며 화면을 채운다. 그러니까 공포와 멜로가 교차하게 된다.

장르의 변주는 과거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감독의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통해 익히 겪었던 일이지만 이 영화가 좀 더 놀라운 건, 부드러운 멜로가 오히려 강력한 공포를 흡수해 버린다는 점이다. 물론 처음에는 좀비와 사투를 벌이는 줄리엣의 무시무시한 현실에 더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회상 장면으로 등장하는 잭과의 러브스토리는 괜한 사족으로 여기게 된다. 하지만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감성을 자극하는 둘의 러브스토리에 몰입이 되는 순간, 차가 뒤집힌 현실은 오히려 찬밥 신세로 전락한다. 이젠 회상장면이 빨리 나오길 기다리게 된다.

궁금해 하는 이들을 위해 그들의 러브스토리를 대강 알려주자면 잭과 줄리엣은 잭이 운영하는 갤러리에서 처음 만나게 된다. 잭은 돈 많은 부자였다. 반면 줄리엣은 뒷골목에서 마약을 팔아서 먹고 사는 시궁창 인생이었다. 자신도 마약중독자였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어느 날, 줄리엣은 비를 피하기 위해 잭의 갤러리에 관람객으로 위장해 들어서게 되고, 그런 줄리엣에게 잭은 첫눈에 반하게 된다. 줄리엣은 비록 성격파탄자지만 한 미모한다. 또 매력적이다. 그건 잭도 마찬가지. 허나 삶의 레벨 차이가 너무 컸던 탓에 줄리엣은 잭이 접근해오자 그를 경계하며 밀어낸다. 마치 지금 자신에게 달려드는 좀비를 밀어내듯이. 이후 가슴을 후벼 파는 둘만의 밀고 당기기가 이어지고 마침내 둘은 연인이 된다. 동시에 줄리엣은 잭의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인해 시궁창에서 구해지지만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결국 이별하게 된다.

그런데 그 즈음, 교차 편집으로 현실의 공포와 과거의 로맨스를 오가면서 관객이 느끼는 사랑에 대한 감정도 점차 무르익어 가는데 좀비영화를 통해 사랑을 표현하는 초반의 어색한 느낌은 사라지고, ‘사랑’과 ‘좀비’ 사이에는 닮은 구석이 몇 가지 있음을 본능적으로 깨닫게 된다.

사실 사랑에 빠지면 누구든 사랑의 좀비가 된다. 주위는 돌아보지 못한 채 자신의 심장을 빼앗아 간 그 사람만을 보고 달려든다. 그러니까 영화는 현실에서 줄리엣에게 달려드는 좀비나 과거 첫눈에 반해 줄리엣에게 다가서는 잭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좀비는 또 멍청하다. 죽을 줄 알면서도 무작정 달려든다. 사랑에 빠져도 바보가 된다. 아플 줄 알면서도 빠져든다. 그래서 좀비영화가 공포물이듯 사랑도 가끔 공포물이다. 언젠가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역시나 두렵다. 잭과 줄리엣이 처음 만났던 날, 잭의 갤러리에서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이 전시 중이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표현주의 화가인 그의 그림들은 대체로 추하다. 그래서 그날 잭은 줄리엣에게 베이컨의 그림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베이컨의 그림을 보는 법은 추함을 초월해 보는 거예요.” 이 영화의 결말이 그렇다. 그 모든 추함을 초월하는 가슴 시린 아름다움이 기다리고 있다. 그건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 거칠고 추한 세상에 사랑이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라고.

2018년 8월 23일 개봉. 러닝타임 83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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