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 의미, 바로잡아야!
개천절 의미, 바로잡아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9.27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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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은 우리나라의 생일인 개천절로서 가장 큰 국경일이다. 그래서 정부 주관으로 기념식을 하고, 수많은 민간단체들도 나름대로 행사들을 한다. 그런데 나는 양력 개천절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정부와 교과서에서 “개천절이 국조 단군의 고조선 개국일”이라고 설명하는 내용이 사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개천절의 개천(開天)은 ‘하늘을 열다’, 또는 ‘개국천하(開國天下)의 준말’로서 ‘인간 세상에 처음으로 나라를 세웠다’는 뜻이다. 그런데 교과서에서 개천의 근거로 제시하는 『삼국유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환국 임금[환인]의 서자인 환웅이 인간세상을 탐하므로 아버지가 천부인 세 개를 주면서 홍익인간을 할 만한 삼위태백에 내려보내 다스리게 하였고, 환웅이 삼천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에 내려와 신시를 열고 세상을 다스렸으며, 그와 웅녀 사이에서 난 아들 단군이 평양성에 도읍하고 고조선을 건국했다.

그리고 「단군세기」에는 ‘개천 1565년 상월 3일 왕검이 오가의 우두머리로서 단목의 터에 자리잡아 건방(建邦)하고 이름을 조선이라고 했다’고 하여, 『삼국유사』의 기록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 기록들을 살펴보면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누가 개천했는가 하는 문제다. 위의 두 기록으로 보면, 분명히 인간세상에 내려와 처음으로 나라를 세운, 즉 개천을 한 사람은 ‘신시’를 건국한 환웅이다. 『삼국유사』 외에 『제왕운기』 『응제시주』 『세종실록』 등의 기록도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환웅이 개천했다는 내용은 같다. 그렇다면 국조(國祖)는 단군이 아닌 환웅이 된다. 반면, 조선왕조실록 초기의 일부 기록과 대종교 측의 책에 단군이 개천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신뢰도 면에서 많이 떨어진다.

둘째는 양력 10월 3일이라는 날짜의 문제다. 기록상으로 개천은 음력 10월 3일에 이루어졌고, 그래서 역사적으로 영고(迎鼓), 무천(舞天) 등 대부분의 고대 제천행사가 개천일인 음력 10월 3일에 행해졌다. 또 임시정부로부터 1948년 정부 수립 때까지는 음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기념했는데, 1949년 10월 1일에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로써 양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정했다. 이때 국회의원들도 개천일이 음력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양력으로 환산하기가 복잡하고, 음력 10월 3일은 날씨가 추우며, 양·음력보다 날짜가 더 중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양력 10월 3일로 정했다’고 한다. 값싼 이유다.

셋째는, 단군의 고조선 개국과의 연결 문제다. 「단군세기」의 기록으로 볼 때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 날도 10월 3일인 것은 맞다. 그러나 신시가 있었으니 고조선 개국일이지 개천일은 아니다. 그리고 교과서에서는 ‘홍익인간’을 단군의 고조선 건국이념이라고 소개하는데, 『삼국유사』에는 환인이 환웅에게 내린 개천이념이라고 했을 뿐 단군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확대해석이 된다. 뿐만 아니라 이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최근 이찬구 박사가 홍산문화 유적을 분석하여 ‘새(鳥) 토템의 환웅족 문화’라고 밝혔는데, 모든 역사교과서에서 홍산문화 지역을 고조선 세력 범위에서 제외시키고 있는데다, 단군의 고조선이 우리 겨레 최초의 국가라고 하게 되면, 홍산문화를 포함한 서기전 2333년 이전 만주 지역의 국가시대 유물은 우리 민족의 것이라고 주장하기 어렵게 된다. 오히려 이 유적을 근거로 자기들이 ‘5500년 전에 국가 모습을 갖추었다’고 주장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도와주게 된다.

따라서 적폐청산을 내세우는 현 정부 주도 아래 신뢰성 있는 사서의 근거 확인과 공론화를 거쳐 개천절의 의미와 날짜를 시급히 바로잡기를 간절히 청원한다.

박정학 역사학 박사 (사)한배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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