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 멧돼지와 공존하는 길
공공의 적 멧돼지와 공존하는 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9.27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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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가 밭에 들어와서 고구마 밭이 엉망이 됐어요” 하는 피해신고 전화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들어온다. 야생동물들의 농작물 습격은 해마다 증가한다. 수확기는 물론 파종기, 생육기를 안 가리고 농작물을 망치기 일쑤다.

농가에 피해를 주는 야생동물은 멧돼지, 고라니, 까치 등 종류도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멧돼지 피해가 가장 심각하다. 지자체에서는 멧돼지와 고라니를 유해동물로 지정하고 수렵기간을 정해 즉시 포획할 수 있도록 기동포획단을 운영한 끝에 올해에도 멧돼지 600여 마리를 포획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된다.

한 번에 5~6마리씩 다산을 하고 20마리 정도가 무리를 지어 먹이를 찾아 계속 이동하는 습성 때문에 정확한 개체 수 파악도 어렵다. 상위 포식자도 없는 상황이어서 급격하게 늘어난 개체 수의 인위적 조절은 어려운 상황이다. 폭염, 한파 등 기후 변화에 따른 먹이 부족으로 먹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농가로 침입하게 되고 그 피해는 매년 증가한다. 그중 피해가 많은 작물은 멧돼지가 제일 좋아하는 고구마와 옥수수이다.

가을 수확철이 다가오지만 논과 밭에 멧돼지들이 왔다 가면 쑥대밭으로 변해 버린다.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 키운 농작물을 망친 농민들은 허탈감에 빠진다. 그리고 새끼를 포육하는 이 시기에는 밤낮을 안 가리고 산을 내려온다. 한낮에 맞닥뜨려도 도망가지 않고 사람을 위협하는 아찔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하지만 밤을 새워 농작물을 지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성들인 농작물을 지키고 멧돼지를 기 위해 멧돼지 포획 트랩을 설치하고, 총소리와 폭죽소리로 위협하고, 은색 테이프로 농지 주변을 두르고, 심지어 전기가 흐르는 울타리를 설치하는 등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한다. 그리고 각 지자체에서는 갖가지 아이디어를 내고 예산을 들여 많은 시책을 추진하지만 수시로 드나드는 멧돼지와 유해 야생동물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다.

도시개발과 경작지의 확장으로 야생동물이 살아갈 공간이 비좁아졌다. 그로 인해 먹이도 줄어들고 먹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야생동물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산을 내려온다. 본래 초식동물이던 멧돼지도 토끼, 들쥐와 같은 작은 짐승부터 어류와 곤충까지 아무 것이나 먹는 잡식성 동물로 변했다. 환경변화에 적응한 탓이겠지만,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피해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선진화된 동물보호제도를 시행하는 독일에서도 한때는 늘어난 멧돼지들이 인가를 휘젓는 통에 골머리를 앓다가 묘안을 찾아냈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인가에 출몰한 멧돼지를 잡기 위해 사냥꾼과 개를 늘리는 대신에 인가와 숲 사이에 완충지대를 설치했다. 사람과 멧돼지의 생활영역이 겹치지 않도록 그들 사이 일정한 폭의 땅에 멧돼지가 먹고 쉴 수 있는 여러 야생식물이 자랄 공간을 조성했다. 사람을 보면 공격하던 멧돼지들은 그 뒤로 공원의 사슴처럼 온순해졌고 인가 출몰도 급감했다.

위 사례로 볼 때 멧돼지의 출몰은 서식지 파괴와 그로 인한 먹이 부족이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멧돼지가 농사를 망치니 죽이는 건 당연하다는 사람들의 인식은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

인간도 자연의 한 구성원으로 홀로 살 수 없다. 자연은 어느 한쪽이 죽어야 다른 쪽이 사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같이 살아야 하는 공생의 장이다. 우리가 야생동물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동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일으킨 생태계 내의 작은 불균형을 줄여 우리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실제로 20세기 중반 중국에서 나락을 쪼아 먹는 참새를 유해동물로 지정해 거의 멸종시키자 수확이 늘기는커녕 해충이 창궐해 대흉년으로 수천만 명이 굶어죽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한다.

우리가 먹는 식량 대부분과 의약품 46% 이상은 동식물이 주성분을 이룬다. 그런 자연 속의 야생동물이 사라지는 것은 인간의 건강과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독일의 사례처럼 야생동물도 자연을 구성하는 한 생명체로서 서식환경이 보호되어야 하고, 인간은 동물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다겸 울산 중구 환경위생과 환경관리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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