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국수와 풀빵
그때의 국수와 풀빵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9.18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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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다시다 국물에 푸릇한 쑥갓 한 잎을 띄워, 쑥갓내 은은히 나는 우동 한 그릇. 그것을 파는 ‘미성우동’이라는 가게가 있었다. 내 기억에 그 자리는 대구 동아백화점 건너편일 것이라 생각된다.

수십 년 전 고교시절, ‘미성우동’이라 쓴 큰 간판 글자가 아직도 뇌리에 새록새록 떠오른다. 아마도 어묵도 팔고 찐빵, 만두도 팔았던 것 같다. 대부분 중?고생들이 들락거렸지만 가끔 어른들이 담배를 물고 어슬렁대던 정겨운 곳이기도 했다.

꽤나 맛이 좋은 우동이었다. 아니 풋내기 고등학생에게 무언들 맛이 없었을까. 시장(배고픔)이 반찬이라는 말이 한창 유행했을 때였으니 무엇이든 다 맛있게 먹었을 테다. 아무튼 ‘그때 그 우동’이 아직도 간절히 생각나니 어찌하나!

고교시절 학교에서 일찍 돌아오는 날이면 집 안 별채에 있는 광(곡간)을 꼭 찾는 습관이 있었다. 배가 고프기에 무엇이라도 먹을까해서다. 서늘하고 널따란 광에 들어가면 밀가루, 쌀, 보리, 콩, 된장, 조선간장, 막걸리 등을 담아놓은 단지가 황토흙 바닥에 놓여있었다. 큰 단지에서부터 작은 항아리까지 가지런히 놓여있는 것이 마치 바둑판같았다. 가끔 쌀벌레들이 바닥에서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것이 보일 뿐 안락하고 풍성한 곳간이었다. 쌀벌레가 있다는 것은 유기농 곡물이라는 뜻이니 건강에 하등의 해가 될 게 없다.

광에 들어서자마자 밀가루 세 바가지를 얼른 퍼 담는다. 거기에다 막걸리, 강한 단맛이 나는 당원, 밀가루를 부풀게 하는 이스트 소다, 그리고 맹물을 넣고 휘이 젓는다. 약간 묽은 상태라야 ‘넓적 풀빵’을 굽기에 편리하고 맛이 난다. 따끈하게 달군 프라이팬에 아주까리기름을 뿌리고 반죽 두 쪽대 가득 부어 얇게 편다.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굽지만 몇 분 후 뒤집어서 구워야 그것도 제 맛이 난다. 얼마나 많이 구워봤는지 쏜살같이 뒤집는 나의 현란한 기교에 동생들은 입을 쩍 벌린다. 화덕구이에서 방금 구워낸 피자를 삽으로 꺼내듯 대번에 한 판이 완성된다. 마치 TV 요리프로의 미셀랑 셰프같이….

대구 변두리 시골 농가. 초여름 모내기철이 오면 가족들이 총동원되지만 동네 품앗이들도 와서 거들어준다. 다 같이 모심기를 하는 것은 시골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막대기에 끈을 매달아 모를 심으면 양쪽 논두렁에서 막대기 줄을 조금씩 옮겨 나간다. 한 칸 한 칸 옮길 때마다 누군가 냅다 소리를 지른다. 덩달아 개구리들도 합창을 하듯 울어댄다.

두 시간 정도 모심기를 하면 ‘새참’ 시간. ‘하얀 멸치국수’. 하얀 국수 덩어리가 둥글고 큼직한 모양의 대나무 소쿠리에 가득 담겨있다. 한 사람이 머리에 이고 손에는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온 것이다. 누가 논두렁까지 이 무거운 것을 이고 왔는지 기억에 없다. 40대 후반이던 나의 엄마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국수 먹을 시간이다. 먹는 방법은 별 거 없다. 멸치국물에 삶은 백국수를 타 먹으면 된다. 댕기머리처럼 감아둔 한 뭉치의 국수. 대나무 바구니에 여러 뭉치가 쌓여있고 물기가 쪽 빠져있다. 삶은 지 얼마 안 돼 탱글탱글하게 빛난다. 맛의 핵심은 ‘양념장’이다. 조선장에 굵은 파, 마늘, 참기름, 깨소금을 넣어 만든 요술 같은 한국식 소스다. 국수 한 덩이에 멸치국물을 부어 이 양념장을 넣고 휘저어 먹으면 초간편 꿀맛이 된다. 그래서인가, 아직도 그 때 그 국수를 잊지 못하고 즐겨먹지 않는가!

쑥갓향 나는 구수한 우동, 추억의 우동이다. 하얗고 깨끗한 국수,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들만 즐겨먹는 먹거리 멸치국수. 이렇게 맑고 순수한 밀가루 국수를 편안히 먹을 수 있듯이 우리는 늘 맑고 순수한 행복의 국수를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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