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칼럼]울산 시립미술관이 가야할 길
[이정호 칼럼]울산 시립미술관이 가야할 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9.12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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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립미술관 건립을 위한 시민토론회가 지난달 29일 시청에서 열렸다. 공론화 과정의 마무리 절차였다. 처음부터 공론화의 범위를 건축설계와 운영방안으로 제한했기에 당초 계획에서 큰 변화는 불가한 상황이었다. 전문가위원회는 세 차례가 있었는데, 분야별 권고안은 대강 이렇다. 기존 설계를 유지하되 중요 의견은 건축가와 협의하여 최대한 반영한다. 부지와 공간 확장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문화예술전문 도서관 건립을 검토한다. 객사 부지는 미술관 연계 행사장으로 활용하고, 주차장은 상가 활성화를 감안한다.

시민토론회는 이를 바탕으로 진행하기 위해 두 사람의 브리핑이 필요했다. 문화예술과장의 절차 설명과 설계당선작 건축가의 설계 의도가 그 내용이었다. 토론회에서는 대개 미술관의 조속한 건립 재개 촉구와 주차장 문제, 미술관의 외관 변경과 전시장 확보 등을 집중 토론했다. 일반 시민들도 좋은 미술관을 짓는 데 참여했다는 측면에서는 나름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분야별 권고안에 대해 집중토론이 진행되지 못한 점과 발언권이 주로 중구 주민들에게 편중되면서 중언과 부언이 되풀이된 점은 유감이었다.

필자는 토론에 앞서 배포된 유인물 세 가지를 주목했다. 공론화에 대해 정면비판을 넘어서 ‘분서갱유’라는 문자를 동원한 한 전문가위원은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분한다. ‘미술의 원전(元典) 도시’라는 울산의 핵심가치 도입을 비롯한 6가지를 공개적으로 건의한 ‘문화도시울산포럼’ 이사장의 글은 적극 수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객사와 미술관의 공존 방안들이 묵살된 의견에 다시 주목하기를 주문한다. 아주 섬세하고 치밀하게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한 ‘문화예술관광진흥연구소’ 소장의 의견은 놀라운 식견이었다.

그리고 6일 후 울산시장의 공론화 결과 발표가 있었다. 가장 주목받은 것은 울산 중부도서관 건립예정지(구 기상대 자리)에 문화예술전문 도서관이 건립된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짓기로 했던 중부도서관은 혁신도시로 자리를 옮길 전망이다. 그동안 활용방안에 이견이 많았던 객사(학성관) 터는 내년 연구용역과 시민토론을 거쳐 영구 활용방안을 확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주차장 문제는 추가로 확보할 계획이며, 시민들에게 미술관 건립·운영 관련 자료를 홈페이지를 통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할 모양이다.

큰 틀에서 보면 시장의 발표에 대개 동의한다. 그런데 발표한 내용에는 전문가위원들의 권고안을 주로 수용했지, 시민들이 지적하고 제시한 부분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이 없다. 정해진 것은 미술관의 위치와 규모는 원안대로 가고, 새로 짓기로 한 중부도서관 자리에 문화예술전문 도서관을 짓겠다는 것뿐이다. 개관 지연과 비용 추가를 감수하면서까지 내놓은 결과가 이것이라면 공론화 과정은 공염불이다. 문제는 향후 진행과정일 텐데 유인물로 공개 질의한 세 사람도 시민의 대표로 의사결정에 참여케 해야 한다.

이분들을 필두로 다수의 시민들이 주문한 내용이 많다. ‘미술관이 울산유형문화재 1호인 동헌을 위축시키지 않아야 한다. 미술관의 외관이 전혀 미술관답지 않고, 울산의 핵심가치를 담지 못했으며, 곡선미가 없어서 주변 한옥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미술에 대한 시민들의 담론을 형성하고, 공연이 가능한 공간을 확보하라. 지역 화가들을 위해 전시공간을 더 확보하라’ 등 의견들이 무척 많다. 이번 공론화에 대놓고 반기를 든 전문가위원은 해촉하고, 담당 공무원들이나 설계당선작의 건축가도 더 많이 귀를 열어 완성도 높은 미술관을 만들어 가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객사 터에 애정이 깊다. 원래 동헌이나 북정공원과 중부도서관, 객사 터 모두 조선시대의 관아 터이다. 향후 그림은 동헌과 학성관을 가로지르며 미술관이 중심이 되는 모습이 된다. 불행하게도 이들을 둘러싸고 있던 읍성은 420여 년 전에 허물어졌다. 정유재란 때 왜군들이 울산읍성과 병영성의 성돌을 빼가서 도산성(울산왜성)을 쌓았다. 읍성 복원은 울산 사람들에게 영구미제의 아픈 역사가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읍성 내 대표 건물인 학성관 유구의 온전한 보존이 확인되어 복원이 가능하게 된 점이다.

그 동안 학성관 복원을 두고 논란이 많았다. 학성관은 임금의 전패를 모셔 놓았던 울산읍성 내의 중심건물이었기에 울산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건물이었다. 객사 터를 더 이상 미술관 전용 공간으로 탐내지 말라. 객사 유구 보존은 지극히 정당한 판단이므로 학성관도 서둘러 건물 복원에 나서야 한다. 다수의 시민들은 단순히 학성관의 복원으로 그치기보다 미술관 전시가 가능한 더블스킨 방식의 복원을 희망한다. 이렇듯 시립미술관은 울산의 역사성과 공존하는 길을 걸었을 때 시민들의 극진한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이정호 수필가·울산학포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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