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하늘에는 강이 흘렀고 뱀도 살았다
울산 하늘에는 강이 흘렀고 뱀도 살았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9.10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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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다. 폭염에 시달린 올여름 우리는 간절히 비를 바랐다. 아니 태풍이라도 하나 왔으면 했다. 가뭄보다 짧은 장마로 열대야가 장기간 지속되어 비에 대한 간절함이 더했다. 막상 태풍 19호 솔릭이 한반도에 상륙한다는 예보에 전국이 비상이었다. 역시 태풍은 태풍이었다. 결과적으로 솔릭은 20호 시마론과 근거리에 위치해 영향을 미치는 ‘후지와라 효과’로 바람의 위력은 적었지만 한반도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다. 그 결과 흡족한 비를 내리고 폭염을 물리쳐 효자태풍 노릇을 했지만, 해상 양식장 피해는 컸다.

이처럼 우리는 물이 필수적이고, 물 때문에 큰 피해를 보기도 한다. 인간 생명 자체가 대부분 물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가 먹어야 하는 수많은 농산물 또한 그렇다. 이렇게 모든 생명에게는 물이 간절하기에 극심한 가뭄일 때 우리 조상들은 비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기우제(祈雨祭)를 올렸다. 용이 승천하여 비를 내려주기를 바랐던 무룡산(舞龍山)과 천신에게 잔을 올리던 고헌산(高獻山), 간절히 바라면 비가 온다는 바래소에서 유래한 파래소 폭포 등에서 기우제를 올렸던 것이다.

올여름 폭염이 두 기압(?) 아래위로 겹쳐 한반도 상공에 머물렀기에 나타난 현상이라면 최근에 나타나는 ‘2차 장마’, ‘가을장마’ 등으로 불리는 것은 또 무엇인가? 마치 하늘에 강이 하나 떠 있어 남북으로 이동하면서 남태평양의 많은 습기를 거대한 두 기압 사이로 이동시켜 물 폭탄을 내리게 한다. 이렇게 내린 비는 소양강 댐 10개 정도를 채울 수 있는 정도이다. 이것을 ‘하늘 강 현상’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울산에는 고래 그림으로 유명한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와 국보 제147호 천전리 각석, 이렇게 두 점의 국보가 있다. 특히 천전리 각석의 상단 부분에 있는 기하학적 문양을 ‘하늘 뱀 현상’이라 하는데 필자도 공감한다. 공룡이나 동양에서 말하는 상상의 동물 용(龍)은 파충류에 속한다. 진화적으로 보면 포유류인 인간은 파충류에 대한 경외심을 늘 가지고 살았다. 천전리 각석에는 인간이 사냥하고 싶은 동물이나 힘세고 지혜로워 구원을 줄 수 있다고 믿는 동물 등을 바위에 새겨 소원을 빌거나 집단적으로 제사(祭祀)를 지낸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자연과 인간의 평화가 지속되던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불을 입에 문 거대한 뱀들이 인간을 덮치는 일이 발생했다. 이것이 이른바 ‘하늘 뱀 사건’이다. 순식간에 하늘에서 불덩어리를 입에 문 뱀들이 덮쳐 많은 피해를 본 선조들이 생각해낸 것은, 각석에 새겨진 동물들만 섬겨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뱀같이 생긴 무수한 불덩어리를 새로운 신으로 받아들여 섬겨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렇게 되자 각석의 윗부분을 과감하게 깎아내고 하늘에서 쏟아진 불의 뱀을 바위에 새겨 새로운 신으로 모시는, 신의 교체 작업을 실행하게 된다.

최근 우리가 직접 목격한 하늘 뱀 현상이 나타난 곳은 2013년 운석우(隕石雨)가 다량 쏟아진 모스크바 남쪽 우랄산맥 근처에 있는 첼랴빈스크(=러시아연방 중서부의 주)이다. 아쉬운 것은 신라시대에 천전리를 방문했던 신라 왕족들이 각석의 아랫부분에 자신들의 행차만 기록하고, 고려시대에 포은 정몽주가 이 근처에 머물렀음에도 이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무관심과 무지의 소치라 할 것인가.

그 흔적(천전리 각석)이 세상에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1970년 12월 24일의 일이었다. 동국대학교 불교유적조사단이 대곡천 유역에 있던 반고사 터를 찾으러 왔다가 이 유적을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청동기 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유적에 대해 그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도 있었을 텐데…. 수많은 세대에 걸쳐 마을 아이들이 그 앞 계곡에서 물놀이도 했을 텐데…. 보아도 보이지 않았던 바위그림에 ‘국보 제147호 천전리 각석’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 바위그림은 인류사에서 신석기 후반과 청동기시대를 아우르며 한반도 울산지역에 사람이 집단으로 살았다는 구체적인 증거로서 지금도 빛나고 있다.

윤주용 울산시농업기술센터 소장 · 농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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