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의 시네에세이]파란 첫사랑-‘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이상길의 시네에세이]파란 첫사랑-‘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8.30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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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한 장면.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한 장면.

 

빨강은 뜨겁고, 파랑은 시리다. 색감 자체가 그렇다. 빨강이 정열적이라면 파랑은 시원한 느낌이다. 빨강은 불을 연상케 하지만 파랑은 바다가 떠오른다. 그래서 사랑이라 하면 대부분이 파랑보다는 빨강을 떠올린다. 사랑이란 것도 뜨거우니까.

하지만 불이 가장 뜨거울 땐 정작 파랗다. 가스레인지 불처럼. 사랑을 표현함에 있어 빨강이 한 수 아래인 건 그것이 사랑 전체를 담아내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다. 사실 그렇지 않나. 빨강은 서로 뜨거울 때, 그러니까 좋을 때만을 담고 있는 느낌이다.

반면 파랑은 사랑에 대한 전부를 담아낼 수가 있다. 사랑이란 것도 반드시 끝이 있기 마련이어서 끝나고 난 후의 그 시린 감정을 파랑은 아주 잘 표현할 수 있다. 게다가 불이 가장 뜨거울 때도 파랑이어서 그것에는 미치도록 뜨거웠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린 상처로 변해버린 사랑의 슬픈 생애가 잘 녹아있다. 사랑에 가장 어울리는 색깔? 그건 빨강이나 분홍이 아니다. 파랑이다. 첫사랑은 더욱 그렇지 않을까. 이루어지기가 더 힘드니. 그래서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파랗다. 뜨겁도록 시리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주인공 엘리오(티모시 살라메)와 올리버(아미 해머)의 사랑도 파랑이다. 엘리오는 이제 열일곱이고, 올리버는 스물넷이었다. 둘 다 남자다. 참. 깜빡했다. 파랑이 사랑 전체를 완벽하게 담아낼 수 있다는 건 그것이 동성애까지도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뒤 엘리오와 올리버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자신이 동성애자가 아닌 이상은 뜨겁다기보다 시리다. 시려서 보기 힘들다. 정작 둘은 뜨거운데. 그래서 이 영화는 파랑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퀴어(동성애) 작품이라고 얕잡아 보지 마시길. 이 영화,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까지 받았고, 각종 영화제에서 79개나 상을 받았다.

그랬거나 말거나 둘은 어느 무더운 여름날 이탈리아에서 처음 만나게 됐다. 열일곱의 엘리오는 이탈리아 별장에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러 왔다. 내내 지루했던 엘리오는 여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는데 그 때 스물넷의 청년 올리버가 찾아오게 됐다.

올리버는 엘리오의 아버지로 교수였던 펄먼(마이클 스털버그)의 보조 연구원이다. 훤칠하고 잘생긴 마스크에 지적 수준까지 뛰어나 여자라면 누구든 끌릴 만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 그에게 끌린 건 어린 엘리오였다. 같은 남자인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갖게 되는 그 감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전적으로 관객들의 몫이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영화 속에서 그 끌림은 꽤 자연스럽다는 것.

그랬다. 그건 자연과 닮았다. 태양이 더욱 강렬해지는 여름은 빨강에 가깝지만 그 빨강을 흡수한 대자연은 정작 푸르러만 간다. 초록빛이 더욱 짙어진다. 빨강과 초록은 서로 보색관계. 반대라는 뜻이다. 어울리지 않는 그 조합이 오히려 자연스럽듯 엘리오와 올리버의 낯선 사랑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연스럽다.

사실 모든 애로스적인 사랑에는 영원불변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둘’이라는 것. 남녀를 떠나 그들도 대자연 속에서 그냥 둘이었다.

하지만 뜨거운 여름도 점점 끝을 향해 가고 있었고, 둘은 마지막 이별여행을 함께 한다. 나란히 파란색 옷을 걸친 둘은 초록의 들판을 마음껏 누빈다. 그렇게 파랑은 초록까지 흡수하고 만다. 어린 엘리오의 옷이 더 짙은 파랑이었다. 그에겐 첫사랑이었다. 첫사랑이 그렇다. 잔인하도록 강렬하다.

사실 빨강은 뜨겁기도 하지만 핏빛 상처도 품고 있다. 첫사랑이 떠나고 2년 뒤 추운 겨울 어느날 엘리오는 올리버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서로 “보고싶다”는 말 뒤로 올리버는 미안해하며 결혼 소식을 엘리오에게 전한다. 물론 상대는 여자였다. “좋은 소식”이라는 축하의 메시지 뒤로 엘리오의 표정은 점점 굳어만 갔고,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 빨갛게 피멍이 들어가는 모닥불 앞에 앉아 몰래 눈물을 훔친다. 그제야 엘리오도 깨닫는다. 겨울이 왔다는 걸.

2018년 3월 22일 개봉. 러닝타임 132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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