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 예절에 대한 자기성찰
술자리 예절에 대한 자기성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8.29 22: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는 모두 잘 먹고 잘 살기를 원하며 살아간다. 사상 최고로 더웠던 지난 여름에는 삼계탕이나 냉면, 물회 등 각자 자기 몸에 맞는 음식을 먹으며 폭염을 이겨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추어탕이나 돼지국밥을 먹으며 원기를 보충할 것이다. 그만큼 식사는 중요한 사회활동의 하나다. 그 옛날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생물학적 활동이었지만 지금은 인간관계의 출발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온 가족이 한 밥상머리에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며 예의범절을 배우던 시절은 먼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필자는 20여년간 사업을 하면서 처음 만난 사람과 식사자리 못지않게 술자리도 많이 갖는다. 아니 두 가지를 겸한 자리를 많이 만든다. 처음 만나 서먹한 사람과 친화력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식사를 함께하는 것이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친밀도가 매우 높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가족을 식구(食口), 식솔(食率)이라 하지 않던가.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동석자에게 술을 권하며 “당신이 잘 되어야 나도 즐거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듣는 몇몇은 선뜻 동조하지 않는다. 괴로웠던 과거의 경험과 상대방에 대한 고정관념이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술에는 반드시 그에 맞는 ‘에티켓’이 따라다닌다. 술과 예절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우리의 전통 주도(酒道)는 자취를 감추고 서양의 편리한 주법이 뒤섞이면서 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우리의 전통 주도는 어른을 공경하는 데 주된 뜻이 있다. 술은 즐겁게 마시되 함부로 하지 않고, 엄히 하되 어른과 소원해지지 않아야 한다.

우리 조상들은 음주에서도 장유유서(長幼有序)를 지켰다. 동배간의 주석에서야 그렇지 않으나 서로 존경하는 자리에서는 주법의 세밀함이 예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격변기를 거치면서 우리의 음주문화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엄한 어른이 없어지고, 마시는 술도 대개 서양서 들여오다 보니 예(禮)의 세밀함이 많이 사라지고 오히려 이를 무시하는 풍토까지 생겨났다. 그렇더라도 술자리 예절은 서로가 지켜야 한다.

예의란 어느 시대 어느 장소건 상대방을 기분 좋게 배려하는 것이다. 또 예의란 몸에 밴 깔끔한 매너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좋은 술과 음식이 나올 때 그 맛과 향을 감상하며 서로 이야기 나누는 것이다. 그 술이나 음식에 얽힌 해박한 지식을 갖추면 금상첨화다. 필자는 험했던 과거 술버릇을 고백하며 상처받은 이에게 감히 용서를 청한다. 앞으론 나보다는 상대방을 먼저 이해하려고 애쓰겠으며, 성급하게 반쪽 답안지를 작성하지 않고 과거에 얽매이지도 않고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겠다.

먼저, 상대방의 호의와 진실한 모습을 보면 자기중심적이 아니라 그동안 알았던 모든 이의 생각을 다각도로 맞추어보겠다. 그러다보면 나 자신에게만 어울리는 옷으로 만들어 입고 과거보다는 더욱 완성된 모습으로 질 높은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또한 어떠한 문제이든 감정적으로 판단하거나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 전에 서로 충분히 대화를 나눈 다음 최종 결론을 내리겠다. 어느 한 쪽에만 귀를 기울이다 보면 반쪽의 확신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해서 실수와 오판이 뒤따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약한 마음과 유혹과의 싸움에서 이겨내는 것이다. 누구나 “좀 더 참으며 지켜볼 걸!”, “그때 내가 왜 그랬지?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추억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과거는 흘러갔다. 후회는 어리석은 자의 푸념일 뿐이다. 태양은 내일도 다시 뜬다.

이동서 (주)젬스 대표이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