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끝자락에서
여름 끝자락에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8.27 21: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상보다 약해진 태풍 ‘솔릭’이 지나갔다. 아직도 그 영향인지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살랑거린다. 이제 가을로 들어서려는가. 정말 이러다가 가을로 슬며시 넘어갈 것 같다. 그러면 안 된다. 새로운 계절, 가을이 오면 안 된다.

이유에 대해서 답하고 싶지 않다. 끈질기게 왜냐고 묻더라도 이야기하지 않을 거다. 특별히 이렇다 할 이유 또한 없다. 가을이라는 절기가 슬그머니 다가오는 것이 싫다는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쓸쓸함’의 감정이 원인이라고 하면 답이 될 듯하다. 작년에도 그것이 오지 않았나! 지독한 ‘고독함’이…. 그래서 마음 깊은 곳을 할퀴고 간 흔적이 있으니 수긍이 가지 않겠나.

독일의 시성 하이네는 ‘가을의 쓸쓸함’을 이렇게 읊고 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해주오/ 쓸쓸함으로 그려내는 가을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그려내는 한 폭의 수채화이게 해주오/ (중략) 바람에 살랑이는/ 코스모스 향기 따라 가을을 실어옴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의 흐느낌 속에서도/ 이 가을이 내게 쓸쓸함이지 않게 해주오’〔가을 기도, 하이네〕

내 마음 속 스산함이 오지 않을 고요한 때 제발 가을이 왔으면 한다. 앞으로 그 쓸쓸한 감정이 북받치지 않을 거라고 보장된다면 자신 있게 받아 주리라.

나만의 호수가, 가로수 길에 가느다란 갈색 소나무잎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길가의 수많은 은행잎이 노랗게 변색되지 않는다면 받아 주리라. 나만의 오솔길에 서 있는 산수유나무 열매가 빨갛게 바뀌지 않는다면 허락하리라.

걸어 다니는 길손들이 옷깃을 세우지 않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지 않는다면 한번 마음먹어볼 테다. 매미소리도 그치지 않고 계속 울어댄다면 한번 생각해볼 거다. 나의 아파트 베란다 헌식대에 가을새가 찾아오면 그것도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니 허락할 수 없다.

가을우체국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림은 애잔한 마음이 더해짐으로 가을이 오지 않아야 한다. 가을하늘 흰 구름에 고추잠자리 무수히 나는 모습 어찌 보려고! 맑은 가을하늘에 검정 붓으로 주욱 그어 보고 싶은 마음이 솟아오르니 싫다. 가을 산길을 가다 툭 머리통에 꿀밤 한 대 맞기도 싫으니 어찌 이 가을을 맞이하겠나! 황갈색 단풍숲 속에서 나를 부르는 누군가 있을까봐 가을이 싫어진다.

이렇게 우리를 끝없는 ‘쓸쓸함’으로 고문하는 가을이라면, 차라리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기세등등한 혹서도 이젠 기력을 잃고 지쳐가지 않는가. 폭염은 끔찍이 싫지만 폭염이 있는 한 가을은 절대 오지 않으리라. 가을이 오면 잔인한 외로움이 엄습하기에 나는 기꺼이 도리질할 거다.

세월이 흐르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는가. 이제 막을 수 없는 계절이 거세게 밀려들어올 텐데. 선각자 노자(老子)인들 장자(莊子)인들, 아니 그들보다 더 성스러운 그리스도나 붓다인들 막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마음속에 흐르는 강물 같은 세월은 막을 수 있으리라.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거늘. 고요한 마음의 정지, 자아의 강한 의지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거늘.

간절히 바라건대 ‘순수한 아름다움’이 넘치는 계절 ‘행복한 가을’이 도래했으면 좋겠다. 다가오는 이 가을이 더 이상 외로움을 그려내는 가을이 되지 않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