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윤봉길 의사의 국적은?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국적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8.26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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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과 윤봉길 의사의 국적을 물으면 오히려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지 모른다. 그러나 1936년 8월 9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부문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와 3위 남승룡 선수의 가슴에는 일장기가 붙어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뭔가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현행 우리 헌법 전문에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정을 표방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수립되고 13일 선포되었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공포하면서 ‘대한민국 원년 4월 11일’로 표기함으로써 ‘대한민국’이 공식적인 연호가 된 후 1948년 이승만 대통령 당선 선언문과 관보 1호에서 ‘대한민국 30년’이라는 연도 표기를 할 때까지 ‘대한민국’이라는 연호를 썼다.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일제의 주요 인물을 제거하기 위해 김 구 주도로 80여명의 애국청년들을 모아 1931년 10월 중국 상하이에서 비밀공격조직인 한인 애국단을 결성했다. 이봉창 의사는 1931년 12월 13일 양손에 수류탄을 들고 선서식을 마친 뒤 1932년 1월 8일, 동경 경시청 앞을 지나가는 일왕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는 의거를 단행했다가 10월 10일 사형에 처해졌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6일 입단 선서식을 하고, 4월 29일 천장절(天長節) 겸 전승축하기념식에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로 검거되어 12월 19일 총살형으로 순국했다. 그런데 이들이 선서문에는 각각 ‘대한민국’ 13년, 14년이라는 날짜를 적었다. 심지어 ‘대한민국 23년’(1941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대일선전 성명서까지 발표했다. 이는 이들의 공식적 국적이 대한민국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런데, 국사 교과서에는 고조선-삼국과 가야-후기 신라와 발해-고려-조선-대한제국으로 이어지는 국가 법통 다음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아니라 ‘일제 강점기’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임시정부의 조직 구성이나 위치, 활동 등 대한민국의 법통에 준하는 내용이 아주 부실하고, 심지어 한인 애국단을 ‘김구가 조직한 비밀 조직’이라고만 소개할 뿐 임시정부와는 연결시키지 않으며, 각종 광복군의 전투 등 의병들의 무장투쟁을 비롯한 사회적 활동도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국체의 활동으로 기술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되면, 1932년 일제 요인들에게 폭탄을 던져 항거하고 죽음을 택한 한인 애국단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국적이 손기정 선수처럼 일본이 되어버린다. 국적이 분명히 대한민국이었던 그들을 현재의 우리가 일본 국적의 조선인 테러리스트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헌법 정신에도 어긋나는 심각한 자기정체성 상실이다.

손기정 선수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올림픽조직위원회에 가입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일본 국적으로 출전할 수밖에 없었지만, 삼일독립선언문에서 ‘독립을 선언’했고, 상해임시정부의 임시의정원회의를 거쳐 4월 11일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선포’하고, 임시정부가 세워졌으므로 그런 후 우리의 국체는 대한민국, 정체는 임시정부였다. 따라서 이봉창·윤봉길 두 의사를 포함한 많은 광복투쟁가들의 국적은 분명히 ‘대한민국’이다.

이를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국사교과서에서 헌법 전문처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법통으로 살려 대한제국 다음을 ‘일제 강점기’가 아닌 ‘대한민국임시정부 시대’로 고쳐 국체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내용에서도 일제의 수탈 등 일제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한인 애국단이나 의병들의 투쟁, 광복군의 전투는 물론 사회적 계몽활동 등도 대한민국임시정부 차원의 활동으로 자세히 기술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봉창과 윤봉길을 포함한 수많은 대일광복투쟁가들의 ‘대한민국’ 국적을 찾아주어야 한다.

박정학 역사학박사·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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