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도서관 소풍 이야기
울산도서관 소풍 이야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8.22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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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한창이던 8월 초순, 매스컴에서는 ‘111년 만의 최고기록’ 운운하며 난리들이었다. 마침 방학을 맞은 손주녀석들을 데려갈 곳이 마땅찮아 한동안 머리를 싸맸다. “시간을 어떻게 때우지?” 궁리 끝에 떠오른 곳은 얼마 전 문을 연 울산도서관이었다.

첫길이었지만 시내에 자리잡고 있어서 찾기는 쉬웠다. 웅장한 외관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것도 잠시, 문제가 불거졌다. 골리앗처럼 버티고 선 주차관리원이 ‘출입불가’를 선언한 것이다. 175대를 수용하는 구내주차장이 만차(滿車)라는 이유로.

속담에 “답답한 놈이 샘을 판다”고 했던가. 설마 딱지야 끊겠나 싶어 오기 반, 만용 반으로 한적한 곳을 골라서 배짱 좋게 주차를 시켰다. 보채는 아이들을 한참이나 달랜 뒤에 대궐 같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넓고 높다란 공간이 마음을 탁 트이게 했다. “야, 멋있다! 장관이다!” 속으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우선 손주녀석들을 어린이열람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 사이 1층 로비에서 ‘전국공공도서관 이용권’을 발급받았다. 이것 한 장이면 전국 아무 도서관이나 출입할 수 있다니 흐뭇했다. “멋진 발상이야!” 얼마 안 됐는데 아이들이 어린이열람실에서 튀어나와 할아버지에게 안긴다. 10분이 애들한테는 1시간 같았겠지…. 말이 필요 없었다. 곧장 2층 휴게실로 올라가 시원한 아이스크림과 과자로 입막음을 했더니 연신 ‘싱글벙글’이다. 한참 후 계단을 타고 3층 대열람실을 찾았다.

여기서는 마음대로 다니도록 놔두었다. 책 냄새라도 실컷 맡으며 도서관에 친밀감을 가지라는 생각에서였다. 손주녀석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신나게 돌아다녔다.

한참 만에 대출할 책을 물색했다. 나한테는 첫 마수걸이인데 빈손으로야 나갈 수 없지…. 잠시 망설였다. 목공예 서적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떠올랐다. 최근에 탈고한 수필 ‘지팡이에 얽힌 일화’가 생각났다. 목공예 서적은 “지금까지 수집해온 나무지팡이를 작품 수준으로 다듬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 하는 생각에서 골랐다. ‘군주론’은 매스컴에 소개된 잔상이 손을 타게 했다.

책 3권을 내미니 사서담당이 ‘보름간’이라며 ‘8월 16일’을 손으로 적은 포스트잇을 책표지에 붙여준다. 아주 친절하다. 깜빡깜빡 하는 노인네에 대한 배려가 흐뭇한 미소를 짓게 했다.

내친김에 도서관 안에서 느낀 소감 몇 가지를 기록해 둬야겠다. 도서관 이용객들의 에티켓이 말씀이 아닌 탓이다.

여럿이 더불어 쓰는 열람공간이 ‘사설 독서실’ 수준이란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제집 안방인양 사물보따리를 어지럽게 풀어헤치는 짓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도떼기시장 분위기부터 없애는 일에 이용객도 도서관도 신경을 좀 썼으면 하는 생각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박재준 NCN 위원·에이원공업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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