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날의 하모니카
한 여름날의 하모니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8.2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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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까머리 중학시절, 그는 어느 날 ‘하모니카’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포장을 풀고 ‘각’을 열어보니 스테인리스 색깔에 반짝반짝 빛나는 특이한 물건이었다. 너무 기뻤다. 그냥 입에 대고 불어보니 소리도 묘하게 났다. 그것도 낮은 음에서부터 높은 음까지, 하물며 두 옥타브까지 소리가 올라가니 신기하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하모니카란 소리의 강약을 적절히 맞추어 불면 지독히 애절하게 들린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고향생각, 현제명)” 부르기 쉬운 동요를 늦가을 해 저무는 들판에서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부르면 너무 애잔하다.

그가 한때 담당하고 있던 대학 과제세미나반에서는 ‘작은음악회’를 공연하였다. 매년 연말에 열리는 작은음악회는 교수와 제자 간에 인간적 소통을 가질 겸 인성을 기르는 시간이다. 학생들은 각자 자기의 장기를 발표하고 그는 하모니카를 불렀다.

진정 하모니카 연주는 클래식 음악이 멋스럽게 들린다. 오랫동안 몰입해서 배워야 하는 인내도 필요하지만 그 진면목은 역시 하모니카로 잘 표현되는 것 같다.

며칠 전 그의 아내에게 울산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동영상 하나가 전송되었다. 송 라이터 ‘버디 그린’(Buddy Greene)이라는 미국 출신 하모니카 연주자가 카네기홀에서 공연한 것이다.

조그마한 크로매틱(半音) 하모니카를 왼손에 든 채, 작은 체구에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처럼 닮은 얼굴을 했다. 헐렁한 면바지에 귀여운 안경을 끼고 수많은 관중 앞에서 연주하는 행복한 모습이다. 세 개의 곡을 10분도 채 되지 않는 촌철살인의 짤막한 연주여서 깜짝 놀랐다. 팝송도 아닌 클래식 메들리로 연주했는데도 말이다.

그 연주자가 제일 먼저 입에 댄 하모니카 곡은, 바하가 작곡한 Cantata No. 147, ‘Jusu, Joy of Man′s Desiring’이다. 번역하면 ‘주는 우리의 기쁨’으로 해석하는 가스펠 음악이다. 멜로디가 저음에서 고음으로 여러 번 오르내리면서 반복한다. 물 흐르듯 굴러가는 선율이어서 마치 기쁨에 찬 천상의 소리 같았다.

이어 두 번째로 연주한 곡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Piano Sonata No. 16. ‘C major K545’다. 전체 3악장 중 1악장 처음 부분만 발췌했다.

이 조용한 음악은 그가 죽기 1년 전 작곡한 곡이어서 의미가 깊다. 단순하면서 심오하여 몽환적인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 힐링이나 명상, 태교음악에 자주 사용된다. 흔히 말하는 ‘초보 피아노 학습자들이 필수적으로 연습하는 곡’이기도 하다. 피아노가 아닌 하모니카에서 나오는 소리가 이렇게 감미로울 줄이야!

컨트리 음악에 영향을 받은 버디 그린이 세 번째 연주한 곡은, 로시니가 작곡한 ‘William Tell Overture’다. 소위 ‘빌헬름 텔 서곡’을 말한다.

대부분 조용한 음악이지만, 그중 마지막 4부는 스위스 독립군이 힘차게 행진하는 모습이 빠르게 그려진다. 하모니카로 듣는 이 활기찬 곡은 어느 오케스트라 음악보다 매력적이고 감동적이었다.

미국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 때에도 호주머니에 늘 하모니카를 소지하면서 불었다 한다. 전장의 군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의 ‘위안’을 주기 위해서다. 몇 주 전 옆집 아저씨같이 구수한 노회찬 의원이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그는 늘 꿈을 꾸었다고 한다.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여유로이 배울 수 있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그에게는 중학시절부터 배운 ‘첼로’가 있었다. 수준급 첼리스트 정치가였다. 이러한 깨끗한 감성적 삶과 말은 아마 그의 예술적 감수성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적당한 ‘삶의 여유’를 갖는 것, 나아가 따뜻한 사회를 꿈꾸는 ‘여유로움’을 갖는 것이야말로 모두에게 분명 행복을 깃들게 한다.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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